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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Apr 20. 2022

소통의 방법

이직 준비를 하며, 잠시 고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코로나에 걸려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선생님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지도, 관리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약 10년 만의 고등학교 생활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물론, 학생이 아닌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교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요. 많은 생각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수업 때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입장에서 느낀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 고등학교 동창들은 잘 알겠지만, 학창시절 저는 꽤나 말썽쟁이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대들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며 싸운 적도 있었지요(여담이지만, 저는 그런 기억이 너무나 창피하여 은사님들을 찾아 뵙고 지난날의 과오에 용서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사과 할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걸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요.^^;). 그때 선생님들은 참으로 미운 존재였는데, 오늘날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들 앞에 서있으니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대놓고 잠을 자는 것은 기본이고, 핸드폰을 하거나, 옆 친구와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고, 웃고 떠들며 수업을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수업에 온전히 협조하게 만들 수 있을 지에 관한 고민을 했습니다. 수업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무조건 적으로 금지하거나, 강압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은 당장의 금지된 행동을 막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본질적으로 수업에 ‘협조’하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때, 반항아 경력(?)이 있었던 저는 그런 학생들의 심리를 꽤 이해할 수 있었기에, 이 부분을 더욱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하게 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약속을 했습니다. 학생에게 공부를 할 생각이 있니? 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거 딱 n분 까지만 하고, 꼭 공부를 하자. 는 합의를 통한 약속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장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걸 막을 순 없었지만, 그런 약속을 한 학생들은 결국 수업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그것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조율될 수 없을 것 같았던 학생과의 관계를 특별하지 않은 짧은 대화로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학생과 했던 약속이 단순히 ‘약속’을 한다고 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약속 안에 들어가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책임’입니다. 이 역시 단순한 책임이 아닌, ‘내가 선택한 책임’ 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장에 내가 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람과의 약속은 너무나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삶을 살며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할 때, 이번 계기로 배운 요소 두 가지를 애용하기로 했습니다. 글을 읽는 당신도 공감이 된다면, 이를 요긴하게 사용하시길 소망해요.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되자.
소통에는 각자에게 어떤 모습이든 고유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혹은, 하게 만들어주자).

물론, 모든 소통에 이 요소를 적용할 순 없겠지만, 이것이 제가 최근에 느낀 가장 평화적인 소통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 많은 평화의 소통 요소를 발견한다면, 더더욱 행복할 것 같고 이 역시 여러분께 공유하고 싶네요.

끝으로, 공부를 할 것이냐는 물음에 ‘아니오.’라고 답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역시 그 학생의 선택을 존중했습니다. 편하게 자라고 했고, 타인에게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놀아도 좋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마음도 이해합니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맞지만, 교과 공부만 하는 곳은 아니니까요. 동시에 그런 학생이 당장에 가지는 태도가 그 학생의 전부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만약 그 학생을 오래 볼 수 있었다면, 조금씩 소통을 하며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학교에서 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 역시 작은 희망일 뿐이지요.


덕분에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는 유명한 말처럼, 순간의 감정 표현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것 역시 지양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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