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2023년 트렌드 코리아의 10가지 키워드를 보면, 통괄하는 하나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주의'다. '평균 실종', 평균과 기준, 통상적인 것들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고 있음. 소득의 양극화는 정치, 사회 분야로 확산되고 갈등과 분열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됨. '조용한 사직', 받은 만큼 최소한의 일을 하는 현상. '인덱스 관계', 관계의 밀도보다 스팩트럼이 중요해지고 있음. SNS를 통한 목적지향적 만남이 대세가 된 오늘날, 나의 지인은 어디까지 존재하는가. '디깅모멘텀', 자신의 열정과 돈,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현상. '알파 세대',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이 '엄마'가 아니라 아마존 AI의 '알렉사'였던 세대. '네버랜드 신드롬', 어른이 되는 것을 한껏 늦추는 사람들.
짧게 나열해 본 2023년의 트렌드에는 개인주의가 만연해있다. 나의 삶이 타인의 삶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중요도의 갭(gap)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직장과 여러 인간관계, 심지어 가족과 같은 '내가 속해있는' 그룹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삶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우리'라는 단어가 참 우스운 의미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말 그대로 우스운 의미가 된 것 같다. 요즘 '우리'는 보편적인 의미 자체로 존중받기보다, 어떤 정치, 철학(신념), 가치관의 색을 지칭하는 데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칭되는 색은 늘 대립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영향력을 지닌다. 그런 대립 관계에서 오는 소음에 지쳐버린 몇몇은 '우리'로써 존재하기보다 '나'로써 존재하고자 한다. 쉬운 예로 '개취 존중'은 이제 낯설지 않은 예의가 된 것처럼. 이런 현상을 보면서 상호 간의 존중을 통해 유지되는 개인의 평화가 나쁘지만은 않지만, 나는 괜히 씁쓸하다. 나와 색이 다른 자, 그러니까 내 편이 아닌 자를 색출해내기 위해 '우리'가 사용되어선 안되는데, 하는 마음은 금기어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한글날을 기념하여 영화 말모이를 시청했다. 글 덕분에 밥도 빌어먹고 좋은 기회도 여럿 맞이한 만큼 이번 한글날은 단순 빨간 날로 보내기보다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보자는 취지였다. 3년 전,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본 이후로 두 번째 관람이었다. 한글을 지키려는 시대의 상황만 보였던 첫 관람 때와는 다르게, 한글을 왜 지켜야 하고, 한글엔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가 민족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우리'에 있었다.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사람의 한 발자국이 더 의미 있다, 내 나라, 내 아들&딸이 아닌 우리나라, 우리 아들&딸, 그리고 우리말의 의미는 '삶이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닌 같이 사는 것'이라는 이타적 성향이 가득 서려있다. 우리말을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은 타인과 나누었을 때 쌓이는 영향력의 복리를 '우리'라고 지칭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탄압받던 때, 그럼에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혼자서 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한글은, 우리말은 그와 같은 신념을 지키기 위한 실낱같은 희망이었던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포털 사이트에 걸려 있는 여러 뉴스를 보았다. 핵전쟁, 폭발, 사망, 막말 논란, 대립... 일상과 같다고 느꼈던 단어를 다시 한번 보니, 환기되었던 마음이 빠르게 식는 듯했다. 세상이 너무 아프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다. 진정으로 혼자가 된 것은 산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의 시선으론 그렇다. 모두가 지쳐있을 때, 절실하게 필요한 희망이 될 것은 무엇인가?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적어도 영화를 본 직후의 나는 그것이 '우리'에 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