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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Sep 29. 2022

요즘

요즘은 어떤 것을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괴롭다. 오늘 갔던 테라스 딸린 카페엔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늘 배가 고프다. 며칠간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한다. 생각이 멈추니 글을 쓰고 싶은 욕구만 남았다. 운동을 하니 몸이 가벼워진다. 엄마가 많이 아프다. 어깨를 주물러 드리니 그제야 구겨진 미간을 푼다. 늘 찬물로 샤워를 한다. 집 앞 공원 밴치에서 귀뚜라미를 마주쳤는데, 도망가지 않았다. 툭툭 쳐 대니 그제야 억지로 자리를 옮기는 귀뚜라미를 보며 나는 괜히 슬펐다. 빨리 사라지는 해의 날씨는 늘 붉고 파랗다. 이 세상 모습이 아닌 것처럼 멋대로 하다가 그새 깜깜해진다. 오늘 원달러 환율이 1440원을 돌파했다. 작년 이맘때는 1270원도 비싸다고 생각했다. 돈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내 치부를 굳이 공유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이 든다. 그러다 금붕어처럼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잊어버린다. 그런 내가 미웠다가도 이제는 밉지 않다. 미워하지도 않는 존재에겐 어떤 의미가 남아있을까?


앞으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생각을 잃어버리니 무엇이 되고 싶지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무엇에 심장이 뛰는지도 잊어버렸다. 요즘은 고구마와 계란을 주식으로 먹는다. 배가 뒤틀릴 정도의 허기도 고구마를 조금 씹기만 하면 사라진다. 고구마가 들어와 배를 불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먹는 행위를 몸은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단순하다. 나는 지금 경제와 블록체인 소식을 다루는 회사에 다니는데, 그 덕분에 하루 종일 차트와 세계 경제를 본다. 숫자에 웃고 운다. 사람들은 숫자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스스럼없이 한다. 평화를 원하는 것도 숫자 때문이다. 나 역시 눈 두 짝에 숫자가 가득하니 스스로 뭐 때문에 평화를 원하는지 의심하게 된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는 이유가 숫자 때문은 아녔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진심인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아무 생각이 없다.


테라스 카페에서 개미를 밟아 죽이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소리를 지르며 개미 죽어! 개미 죽어! 외치던 어린아이의 부모는 핸드폰을 보기 바빴다. 나 역시 밟혀 으스러지는 개미를 걱정하기보다 어린아이의 찢어질 듯한 소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취침 시간을 새벽 1시로 잡으니 아이폰이 1시만 되면 취침 시간인 것을 알려준다. 이상하게 고분고분 말을 듣게 된다. 정확히는 바로 자진 않지만 마음이 쓰인다.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고 들킨 유년 시절처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당장 뭘 위해 살아야 할까? 다가오는 주말에는 뭘 해야 하나? 다시 평일이 오면 나는 뭐 때문에 일해야 할까? 불편한 것을 정확히 모르는 아기들은 이유를 모르는 것이 불편해서 엉엉 운다던데, 나도 엉엉 울어야 하나? 그럼 무엇이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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