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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Sep 12. 2022

매미의 소명

매미는 소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웁니다. 한껏 시원해지는 9월이 되면 매미보다 귀뚜라미 소리가 귀에 더 익습니다. 저는 근래 여름마다 매미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던 매미들이 하나 둘 길바닥에 굳은 돌로 나뒹구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얼마 남지 않은 매미가 하나의 개인이 되어 아직 다하지 못한 소리를 내곤 합니다. 이 시기가 되면 저는 매미의 소리를 특히 더 경청하는데요. 모든 것을 쥐어짜 내는 듯한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왜 인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시겠지만 매미가 우는 이유는 종족번식 때문입니다. 수컷 매미는 소리를 내어 암컷을 유혹하는데, 경쟁자보다 더 큰 소리를 내야 짝짓기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여름 한창일 때 겹겹이 쌓인 매미의 울음소리는 어딘지 모를 광기까지 느껴집니다. 매미의 짧고 열정으로 보이는 삶은 제게 적지 않은 사유를 선사합니다. 본인을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는 종족 번식을 위해 매미는 뜨거운 삶을 소모합니다. 사실 방금 언급한 본인을 위한 것과 아닌 것의 딜레마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확언할 순 없겠지요. 매미가 이와 같은 딜레마를 인식하는지 확인할 길이 아직 없는 것이니, 인간의 시선으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조금 우스운 말처럼 보일까요? 


얼마 전, 운전을 하다가 폐지를 리어카에 싣고 도로 구석을 묵묵히 걷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우습게 넘을 법한 폐지를 리어카에 쌓고 가녀린 팔과 다리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길을 걷는 할머니의 모습은 사실 낯선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붉은 신호등에 차를 멈추니 리어카를 짊어진 할머니를 더 오래 볼 수 있었습니다. 도로를 걷던 할머니는 방지턱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방지턱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와의 거리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방지턱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할머니의 모습은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신호등의 색은 초록이 되고, 저는 액셀을 밟았습니다. 도로 구석에서 언덕을 넘으려는 할머니와 제 거리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고, 방지턱을 넘어,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을 보고 운전을 이어나갔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그렇게 낮고도 냉정한 방지턱을 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여름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그래서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소수의 매미가 울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오히려 이 세상을 가득 메웠던 뜨거운 여름날의 소리보다 분명하고, 분명합니다. 그들은 무슨 욕구를 가지고 맴-맴 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요? 왜 해야 하고, 왜 멈춰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매미라서, 그래서 멈추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게 맴-맴, 또 맴-맴 울다가 뚝 그쳐 돌이 되는 매미가 길에 보이면, 매번은 아니지만 손으로 집어 흙 위에 놓아주곤 합니다. 그것은 출처모를 쓸쓸함을 위한 이기적인 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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