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이야기를 온전히 소화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정확히는, 항복하기로 했다. 소설 <스토너>는 이야기가 담은 참된 뜻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는 사람에겐 큰 고통으로 작용한다.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 자극적이고, 아파서 다음 문장을 읽기 위해 쉼을 가진 것이 몇 번인지 셀 수 없다. 스토너를 만나고 책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의 다음 단계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지내온 삶의 시간이 오래된 것인지, 이 책이 그만큼 대단한 책인지, 아니면 둘 다인 탓에 적절히 교집합 된 우연에서 발견하게 된 탓인지 알 수 없다. 모쪼록 나는 이 책을 호감을 갖다 못해 철저하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은 호감에서 시작되어, 관심으로... 매력에 빠져 지어지는 미소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눈동자의 흥분으로... 그렇게 잔뜩 인식하게 된 이야기를, 이해해 버린 이야기를 여린 목구녕에 여유로이 넣지 못하고 힘겹게 꿀떡, 어쩔 땐 삼키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내 백기를 들게 되었을 때 나는 사랑을 인정했다. 미숙한 나의 몸은 스토너를 온전히 소화할 수 없다. 주체를 뺏겨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얌전히 흥분의 눈동자로 거대한 그것을 담고, 눈물을 질끔 흘리며 그것들을 꿀떡, 꿀떡 삼켜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놔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삼키는 것일 뿐이었다.
소설 <스토너> 속 각 인물은 인간이 가진 필연적인 결핍을 아주 선명하게 표현한다. 그것은 신체의 결핍일 수도, 정신의 결핍일 수도, 혹은 환경의 결핍일 수도, 상황의 결핍일 수도 있는... 인간이라면 누가 되었든 겪게 되는 결핍을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가는 지를 보여준다. 소설 속 다양한 결핍의 모양과, 그와 함께 지내는 삶을 보면서 느낀 것은, 결핍은 '문제'의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해결이 된다는 것에 고유의 성격을 가진다. 문제를 정의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과 행동을 하고, 그것을 해결한다. 이것이 문제가 가진 고유의 성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핍은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어떤 결핍을 단면적으로 해결하였다 하더라도, 새로운... 혹은 기존에 지닌 결핍의 다른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와 다른 특이점을 지닌다. 우리는 그렇게... 결핍의 고통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도 모르는 삶을 산다. 삶의 이유를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산다 굳게 믿으며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잠시 잊고 살거나,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더라도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로써 우리에게 있다. 그런 형상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하고, 이기적으로 만들고, 결국 혼자로 만든다. 소설 <스토너>는 이와 같이 아주 적은 사람만이 생각할만한, 어쩌면 표면적으로라도 생각하는 그들마저 굳이 이런 이야기가 의미 없다는 것을 합의하고 넘어갈 만한 이야기를 아주 섬세하고, 치밀하게 풀어낸다. 우리는 결국 고고한 척 많은 지식과 지혜를 쌓고 나누지만, 한낯 미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한낯 미물과 같다. 억년의 시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해냈던 인간 삶의 가치 해답이 결국 허무를 넘어선, 생의 마무리를 동력 삼아 진정 무의 가치로 향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으로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죽음을 마주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이 책을 통해 정말 '어렴풋이' 죽음을 경험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동시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생기는 얄팍한 공포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된단 말인가? 그것은 정말 너무나 초라하지만, 가장 소중한 감정이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온 스토너와 나는 그 공포를 통해 무언가를 또 기대하고 있었다. 기대. 그래, 결국 인간이 결핍에 무너지지 않고 아득바득 삶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기대 때문이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지겠지, 후엔 더욱 행복하겠지.
책 중 스토너가 스스로 타인을 지칭하듯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괴로운 물음을 던지는 순간에도, 아직도 그 스스로 새로운 기대의 씨앗을 피우고 있음을... 결핍이라는 토지에서 기대는 끝까지, 영원히 생을 꿈틀거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나도 나 자신이 한낯 미물과 같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백기를 들어버린 나는 망각의 과정을 통해 이 느낌을 마음속 어딘가에 잠재울 것이다. 그렇게 바보같이, 정처를 모르는 미물과 같이 살겠지. 언젠가 결핍과 기대를 멍하니 앉아있다 마주친 나는 그것이 이젠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때 죽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가치도 의미 없어진 나는 언젠가...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장황한 표현이 난무하는 글에도 내 마음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는 것에 한탄하며,
스쳐간 많은 사람이 생각나는 소설, <스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