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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Dec 24. 2021

나는 오늘 밤도 야식을 참는다

1916년 1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독일에는 연합군의 대륙 봉쇄로 인한 식량부족으로 아사하는 사망자가 많았다. 당시 몸이 극단적으로 말라서 사망한 사람들을 연구원들이 부검을 해봤더니 시신의 모든 장기는 정상 무게보다 많게는 40%가량 줄어들어 있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뇌의 무게만은 불과 2%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뇌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일단 자신에게 먼저 영양을 공급하고 남은 것을 다른 장기에 공급했던 것이다.


이런 뇌의 이기적인 행동을 보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뇌는 나인가, 아니면 내가 아닌가. 뇌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몸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통제하는 만큼, 본인의 생존이 가장 귀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판단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는 것이고, 졸리면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러나 ‘생존’에서 벗어난 뇌의 행동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독’이다. 최근 헤로인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자료를 수집하던 중, 눈살이 찌푸려지는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동영상은 마약 중독자에 관련한 영상이었는데, 영상 속 중독자는 오염된 주삿바늘을 팔에 꽂아대는 탓에 손끝부터 어깨로 넘어오는 부분까지의 모든 조직이 썩어서 문드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헤로인의 쾌락 효과는 팔에 직접 주사했을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 중독자의 뇌는 고장 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지언정, 뇌는 단순히 본인의 쾌락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뇌의 행동은 일상 속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전에 먹는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야식을 먹는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운다. 오늘 해야만 하는 일들을 내일로 미루고, 뜯지 말아야 할 손톱을 물어뜯는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뇌는 나인가, 아니면 내가 아닌가? 뇌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는 담배를 끊을 생각이 없다, 밤에는 역시 치킨이지 라고 말하며 ‘뇌’와 ‘나’의 분리된 관계에 대한 내 이야기를 부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가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다면 전자에 이야기한 뇌의 행동에 의심이나 부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뇌’를 ‘나’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정말 ‘뇌’란 말인가. 이런 고민은 헤겔의 ‘변증법’에 의해 조금 해소되는 듯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정正이 반反의 작용과 더불어 합合의 자리로 나아간다는 주장이 인상 깊었다. ‘나’를 변화시키는 ‘타자’는 처음엔 나의 신념과 배치되는 결이지만, 그의 흔적을 간직한 채로 내가 변하던지, 아니면 그를 통해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을 인식하던지 둘 중 하나의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뇌의 이기적인 행동을 보고 고통스러워함으로써 나는 한 걸음 더 발전하고, 나아간다. 특히 인간이 이런 뇌와의 대립을 분명히 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성은 머리에 있는 게 아니라 가슴에 있다는 이야기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유혹하며 ‘나’의 인생에 훼방을 놓는 건 이기적인 ‘뇌’의 역할이지만, 동시에 녀석의 행동 덕으로 ‘나’는 발전하는 것이다. ‘뇌’는 내가 맞다. 그러나 내가 ‘뇌’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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