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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경 Dec 24. 2021

완벽해지는 방법

나의 상병 시절, 용인의 외곽,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눈이 쌓인 산과 나무가 보이던 때. 나는 대대장님 전용 운전병이었고, 그날은 내가 소속된 신병교육대대의 신병들이 훈련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하는 ‘야간 행군’을 하는 날이었다. 출발 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야광봉과 무전기, 그리고 대대장님의 권총과 PX에서 산 과자를 챙긴 후 차를 몰고 사열대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차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기 전이었기에 숨구멍으로 열기가 일정한 리듬으로 뿜어나오고 있었다. 야간 행군은 마지막 관문이라는 이름과 걸맞게 우리 대대에서 (그나마) 가장 집중하는 행사였고, 덕분에 행군할 때면 동네 아저씨 같던 간부들의 참군인 코스프레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야간 행군을 할 때는 덩달아 긴장하기 마련이었고, 운전병의 임무가 그러하듯 절대 실수하지 않으려고 했다.      


해가 산의 정수리 속으로 들어가고, 그가 남긴 낮의 잔해가 희미하게 하늘에 남아있을 시간이었다. 대대장님은 사뿐히 사열대를 내려와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았다.


“충성-”


대대장님은, 글쎄,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학자 같은 사람이었다. 십 년도 훌쩍 넘은 1호 레토나 속에서 그는 자율주행이 완전한 시대가 오면 너는 운전대를 놓을 수 있겠느냐는 식의 기술, 철학, 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평소에는 점잖고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 그런 종류의 이야기만 나오면 들뜬 아이처럼 말하는 게 낯설고 신기했다.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나는 괴짜 과학자나 진리를 깨우친 철학자 같아 보였다(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런 인물은 매력적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일단, 그런 이유를 떠나서 내가 대대장님이 좋았던 이유는 여느 평범한 군 간부들과는 다르게 비효율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행군 때 주로 지정된 스팟에 미리 도착하여 그 지형의 환경 및 상태를 살피고 보고한 후 차에 대기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대대장님은 차에 탑승하자마자 대뜸 운을 띄우며


“오늘은 차 놓고 가자. 훈병들이랑 같이 걷는 거야. 준비해.”


표정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씨발이라고 외치지 않은 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용인의 엄동설한 속 기다란 훈련병 무리 맨 뒤, 나와 대대장님이 걸었다. 밤은 완전한 모습이 되고 행군이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 대뜸 대대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일경, 사람이 말이야. 본인이 의식하는 것으로 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니? 스스로 정한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하는 행동은 다른 행동보다 몇 곱절로 힘이 든다는 거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어?”


“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니. 목표를 이루는 것이나 계획의 성공과는 달라. 그러니까, 사람 자체가 변하는 거야. 마치 네가 엄청나게 큰 수로의 물살에 허우적대고 있는데, 도중에 물살 안에서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찾고, 억지로 헤엄을 쳐서 수로의 벽에 구멍을 파내어 다른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냐는 거지. 가만히 있으면 물살에 몸을 실어 둥둥 떠다니면서 살 수 있는데 말이야.”


나는 너무 힘들기도 했고, 춥기도 했기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맞장구로 그 이야기를 받아쳤다. 맞습니다. 어려우리라 생각이 듭니다. 목표를 이루는 것과 사람 자체가 변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군 복무를 하며 대대장님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눴음에도 오늘날 머리에 남은 이야기는 그 이야기 하나뿐이었다. 수로, 돌멩이, 둥둥, 사람은, 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진 않았다.     


나는 요즘 ‘확인 강박증’을 앓고 있는 듯하다. 확인 강박증이란, 확인하지 못하면 극도로 불안을 느끼는 강박 증세를 일컫는데, 환자들은 보통 확인했음에도 무언가 모를 불안함에 다시 확인하고, 확인할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수 없이 확인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아마 졸업을 하게 되면서 시작한 비즈니스 작업과 더불어 6개월간의 산문집 탈고 작업에서 시작되어 결정적으로 출판물에 있던 오탈자를 발견한 순간, 이 증상이 발화된 것 같다. 내 모든 것을 밤, 낮으로 쏟아부었는데도 오탈자라니. 무식해서 틀리는 문맥은 괜찮다 할지라도, 오탈자라니. 아무튼, 그 덕분에 요즘 상당한 고통을 짊어지는 나다.     


나는 우산과 지우개를 밥 먹듯 잃어버리고, 무엇이든 대충, 크게 보고, 안되면 상황에 맞춰서 일했던 내가 털끝 하나에 희비를 느낀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녹은 눈이 얼어버려 시간이 지날수록 금이 가는 아슬아슬한 땅을 밟으며 행군을 했던 그 밤을 생각한다. 나는 결국 20km 완주를 마쳤다. 몸 이곳저곳에 불량짬밥의 기름이 가득했던 상병 말의 김일경에겐 참으로 큰 도전이었다. 행군의 과정은 어떻게 해야 에너지를 덜 사용하며 완주를 할 수 있을까 에서 시작되어 그냥 발목이 아프다며 엠뷸런스를 타버릴까, 내가 이걸 완주해서 뭘 얻는다고, 아니 이 양반도 끝까지 걷네. 독하다, 독해로 머리를 굴리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는 지경에 도달했는데, 그때 유일하게 불가능에 가까워지는 나를 깨닫게 되었다. 무한히 반복되던 군화의 리듬만을 무의식중에 인식할 뿐, 나는 그저 ‘걷는’ 행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을 쏟았던 책에 떡하니 있는 오탈자를 보며 소주병을 단숨에 들이켰던 밤, 올해는 절대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자. 그래서 준비가 되면 움직이자. 준비되면, 준비되면,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쓸 준비가 되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책을 열심히 읽던 어느 날 대대장님이 말한 물살 속 사람이 대뜸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냥 하면 돼. 그냥 해. 생각하지 말고, 움직이면, 하면, 너도 완벽해지는 거야.”


이 이야기가 갑자기 왜 떠올랐는지, 물살 속 사람의 실루엣이 갑자기 선명해져 나에게 왜 말을 걸었는지, 영겁과 같던 완벽의 고통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행군의 말이 왜 이해가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것은 그저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겠지.

그래서 나는 쓴다. 쓰고, 쓰고, 또 쓰면 나는 달라져 있겠지.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닌, 사람 자체가 변해있겠지.라는 희망 아닌 본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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