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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딧불

우린 모두 빛나는 존재

by om maum

앞선 회차에서 언급한 대로 나는 서울의 한 남자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최소한 음악 시간만큼은 학생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싶은 마음에 5-6년째 고집해 오는 나만의 수업 방식이 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5분간의 ‘힐링 음악 듣기’다.

요즘 사람들은 음악을 들을 때 멜론이나 유튜브 뮤직의 상위 랭크 곡, 또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음악, 아니면 예전부터 익숙한 곡을 듣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음악을 편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매 시간 학생들이 들어보지 않았을 법한 음악 중 다양한 장르와 아티스트를 최대한 고르게 담아낸다. 매 시간의 5분이 모여 언젠가 음악적 취향이 조금은 넓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최근엔 여기에 색칠 놀이를 더했다. 마블 캐릭터나 간단한 도안 그림을 나눠주고 자유롭게 색칠을 하게 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스스로 원하는 색을 입히는 그 순간만큼은 공부나 친구 관계, 혹은 각자 안고 있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한 친구가 묻는다.
“진짜 마음대로 해도 돼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응, 진짜 마음대로 해도 돼.”

처음엔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빈 종이를 가득 채운다.
스파이더맨 그림을 받았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스파이더맨이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까먹어서 못하겠어요...”

“너만의 스파이더맨을 만들어보면 어때?”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는 형형색색의 색연필을 꺼내 들고는 화려한 스파이더맨을 만들어 냈다.


아이들이 ‘정답’만을 쫓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정답이 아닌 정답을 좇느라 삶의 다채로움은 사라지고, 양옆이 낭떠러지인 폭 좁은 길 위를 외발자전거로 아슬아슬 달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음악 시간만큼은 그 길을 조금이라도 넓혀주고 싶다. 외발자전거가 아닌 최소한 두 발 자전거 정도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음악시간에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정답이 없어!! 너희가 말하는 게 모두 정답이야!"이다.

얼마 전, 한 다큐멘터리에서 ‘7세 고시’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7살 아이들이 울면서 공부하고 유명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또 다른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좁은 길 위를 출발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달려 의대에 가고, 의사가 되면 정말 영원한 행복이 찾아오는 걸까?

나는 묻고 싶다.
진정한 의사는 사람을 살리고 보람을 느끼는 존재가 아닐까.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자유를 위해 의사가 된 사람에게, 소명의식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런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부디 이국종 교수님 같은 의사가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의사 집안에서 부모 뜻대로 살아온 정준호가 눈물로 고백한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분칠을 해서 인생이란 무대 위에 세우셨어요
저는 지금 50이 넘었는데,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아요.”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그냥 엄마 아들 강준상으로 살면 안 돼요?”

부모로서,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우리는 아이들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삶의 방향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세상엔 수많은 색이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그 색 모두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자신만의 능력을 키우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오늘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들은 힐링 음악은 ‘나는 반딧불’이었다.
출근길에 우연히 들었는데, 유독 가사가 마음에 박혔다. 꼭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유퀴즈’에 출연했던 가수 황가람의 사연을 짧게 소개하고, 가사를 마음으로 느껴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음악에 몰입했다.

노래가 끝난 뒤 아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쉽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한다. 틀릴까 봐, 혹은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가슴속에 무언가 남아 있는데, 그걸 꺼내는 방법을 모르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나는 조용히 가사를 다시 불러주었다.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눈부시니까.”


나는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키가 크든, 작든 어떤 모습이어도 너희는 모두 충분히 눈부신 존재라고…


스스로를 별이 아닌 반딧불이라 느낄지라도,

그 반딧불의 빛 또한 얼마나 따뜻하고 귀한지를 꼭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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