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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마라톤(서울마라톤)의 열기

전염성 강한 열정

by om maum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뛰어야 하는 긴 거리를 단순히 인생에 비유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마라톤의 속을 들여다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다.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다. 나 자신과 싸우는 치열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를 알아가기도 하고,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동료가 있으며 환경을 만들어주는 조력자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더 가까이에서 느낀 날이 있다.


동아 마라톤은 춘천마라톤, JTBC 마라톤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마라톤이다. 러닝 열풍이 불면서 신청자가 많아지다 보니 이제는 추첨제로 운영된다. 올해 참가 기회를 얻지 못해 내년을 기약하며 ‘동마크루(자원봉사단)’에 참여했다. 자원봉사를 하면 다음 대회의 우선참가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곳은 20km 지점 급수대였다. 집합 시간은 오전 6시 30분, 장소는 종로3가역 12번 출구 앞. 지하철 첫차를 타고 종로 3가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대회에 참가하려는 러너들이 지하철에 드문드문 보였고, 참가자는 아니지만 지인을 응원하기 위해 응원 도구를 챙겨 나온 분들도 함께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선수로 뛰고 싶었기에 서로 목표기록을 얘기하고 대회정보를 공유하는 지하철 속 러너들이 부러웠다.

도착 후 출석 체크를 하고 급수대를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선수들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물과 종이컵, 테이블, 봉사자 간식 등 물자를 운반하는 트럭 기사님, 도로 통제를 돕는 경찰분들, 부상자 발생에 대비하는 의료진, 그리고 도로 통제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시민들의 배려와 이해까지. 선수로 뛰었을 때는 그저 잘 준비된 코스 위에서 나와의 싸움에만 집중했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보니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경찰분들이 도로에 라바콘을 세우고 신호를 점멸등으로 변경하며 도로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대회가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 그룹이 출발했다는 무전을 받고 우리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물을 따르며 급수대를 준비했다. 20km 지점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이 도착하려면 한 시간 이상의 여유가 있었다. 물을 여러 컵 따라 두고 선두 그룹을 기다렸다.

마침내 저 멀리서 선두 그룹이 보였다. 우리나라 선수는 아니었지만, 마라톤 강국인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이었다. 그들의 뛰는 자세와 리듬감은 경이로웠다. 마치 중력을 무시하는듯한 통통 튀는 가벼운 발걸음과 긴 다리로 눈 깜빡할새 지나갔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는 듯했다. 평소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내가 감동과 존경심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선두그룹이 지나가고 우리나라 선수를 보았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거친 숨을 조절하며 선두 그룹을 쫓고 있었다. “파이팅!” 하고 외쳤지만, 목이 메어 크게 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과 더 달리고 싶은 마음이 초 단위로 교차하는 순간에도 매번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응원하며 박수를 치고 파이팅을 외쳤다. 목이 멘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 한 걸음 더 내딛을 연료가 되기를 바라며...

선수 그룹이 지나고 나니, 일반 참가자들이 하나둘 지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가장 많은 인원이 포함된 중간 그룹이 지나갈 때는 물을 공급하는 데 집중하느라 선수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고 응원하고 싶었지만, 물을 받지 못하고 지나치는 선수가 없도록 물컵을 채우는 데 최선을 다했다.

선수로 뛸 때는 내가 가장 힘든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함께 뛰는 러너들의 모습이나 급수대·간식대를 준비해 주시는 분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급수대에서 바라본 마라톤은 달랐다. 외국인 참가자, 연세가 지긋한 참가자, 유모차를 끌고 뛰는 참가자 등 다양한 러너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물과 간식을 준비하면서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마지막 그룹이 지나간 후 도로 통제가 풀릴 시간이 다가왔다. 도로통제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맨 뒤는 부상자를 태운 버스와 엠뷸런스, 경찰자가 천천히 오고 있었다.

이 행렬보다 더 늦게 뛰게 되면 더 이상 급수대도 없고, 간식대도 없으며, 주로 통제도 없이 혼자 인도로 뛰며 완주해야 한다. 우리도 도로통제 제한시간에 맞춰 급수대와 주변 환경 정리를 마쳤다. 그리고 해산하려고 모이는데 완주하기 위해 인도로 뛰어오는 러너들이 있었다. 그들이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들의 속도에는 응원단도, 급수대도, 도로통제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라도 그분들께 박수와 파이팅을 외쳐드렸다. 힘닿는 데까지 달리기 바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몸이 고되고 힘든데, 나는 왜 마라톤에 열광할까? 그리고 나는 무엇 때문에 대회에 참가하려 하고, 오늘 감동을 느꼈을까?

며칠 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러닝 그 자체가 스릴 있고 흥미진진한 것도 맞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최선을 다하는 치열한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무엇에 깊이 몰두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같은 모습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열정의 무리 속 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순간에 뜨거운 열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삶을 역동적이게 만들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주변에 어떤 열정들이 숨어 있는지 찾아보고 그 열정의 바다에 자신을 던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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