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의 시간으로 변화한 학생의 이야기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의 이야기이다.
이 학생은 담임 선생님과 모든 교과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존재이다. 버릇없이 구는 것은 아니지만, 수업 시간에 종종 방해가 되고, 적당한 예의 안에서 말대답을 꼬박꼬박한다. 그냥 두면 수업 분위기를 망치고, 혼을 내면 나름의 이유와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 실랑이 속에서 수업 진도는 더뎌지고, 교사의 기분도 상하게 마련이다. 중학생이라 해도 이렇게 말대답을 하면, 교사로서 내 정당한 지시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나도 이 학생을 혼내 보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 보기도 했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 하는 말과 행동을 동영상으로 찍어 부모님과 공유하겠다는 조치까지 취해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그 순간에만 효과가 있을 뿐, 잠시 후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한 말을 까먹은 듯, 아니면 나의 눈치를 보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최근에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통제와 제도가 오히려 '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통제할수록 제도를 적용할수록 그 대상이 반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나는 학생들에게 모두 똑같은 태도를 강요하기보다는, 그 학생의 마음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과 후 운동장에서 그 학생이 친구와 캐치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체구였지만, 뛰어난 운동신경과 날렵한 몸짓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사회인 야구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터라, 야구를 통해 이 학생과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 트렁크에서 내 개인 글러브를 꺼내 운동장으로 다가갔다.
"공 좀 줘봐, 같이 하자,"라고 했더니, 학생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야구를 잘할까?'라는 의심, 자신의 야구 실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 어른과 함께 해본다는 신기함이 섞여 있는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살살 공을 주고받으며 나도 몸을 풀고, 그 친구에게 경계심을 허물게 했다. 여러 번 공을 주고받는 동안, 그 학생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고, 내게 마음의 문을 여는 듯했다. 나도 점차 구속을 높여 최고의 피칭을 보여 주었고, 그 학생은 내 공이 좋다며 신나게 받아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좌익수 포지션이고, 다음 주 학교 대항전에도 나간다고 자랑했다. 그래서 멀리서 높게 플라이볼을 던져주자, 학생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열심히 공을 잡았다.
그 후, 그 친구와의 강력한 라포(rapport)가 형성되었고, 수업 시간에도 이전보다 훨씬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하며 먼저 공을 던져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담임을 맡거나 교과 수업을 할 때 학생들과 마찰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때마다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늘 해 왔다. 교칙을 강하게 적용해 모두 똑같이 대할 것인가, 아니면 학생의 개성을 파악하고 눈높이에 맞춰 마음을 움직이는 교육을 할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완벽한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첫 번째 방법은 전체를 이끌어 가는 데는 편리하고 기준이 명확하지만, 모든 학생에게 좋은 방식은 아니다. 두 번째 방법은 개별 학생에게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학생들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데다 교사로서 에너지를 모두 쏟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수업 준비와 행정 업무까지 해야 하는 교사가 각 학생에게 정성을 쏟다 보면 스스로가 지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종종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답을 찾았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교칙을 잘 준수하도록 안내하고, 대부분의 학생은 잘 따르지만, 개성이 강한 몇몇 학생에게는 다가가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마음에 닿아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은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이 도전할때 지혜롭게 풀어 나가는 과정을 연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