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는 단어의 본질과 우리가 깨닫지 못한 가치에 대해
‘인연’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며 매우 익숙한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무게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가볍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단어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내 주변의 인연들을 다시 돌아본다면 그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인연’은 ‘인(因)’과 ‘연(緣)’으로 나뉜다. ‘인’은 하나의 원인을 의미하고, ‘연’은 수많은 조건들을 뜻한다. 이를 수박에 비유하자면, ‘인’은 씨앗에 해당하고, ‘연’은 수박이 자라도록 돕는 햇빛, 물, 토양 등 여러 조건을 의미한다. 온전한 수박이 되기 위해 씨앗만으로는 부족하듯, 인연도 하나의 원인과 무수히 많은 조건이 결합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인연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억만 겁의 시간이 쌓여야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매일 만나고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요즘 들어 인연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이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다.
과거에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사람들이 직접 만나고 협력하며 살아야 했다. 불편함이 있더라도 서로 맞춰 가며 관계를 유지했고, 자연스럽게 그 소중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오늘날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혼자서도 많은 일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취미 생활도 1인 방송, 온라인 쇼핑, 온라인 게임 등으로 혼자서 즐길 수 있고, 직장 역시 재택근무나 탄력적 근무제로 인해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과거와 비교해 바뀌어 가는 사회에 적응하다 보면 자연스레 개인주의적 생활방식이 자리 잡게 되는 듯하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관계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피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더 나아가,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벽을 세우며 관계를 제한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를 둘러싼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고, 적대감을 품지 않는 태도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그 감정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괴로움을 줄 뿐이다.
내 주변의 모든 인연이 항상 마음에 들 수는 없다. 어떤 이는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조차도 소중한 인연이라고 여긴다면,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는 불교적 가르침이 있다. 이는 눈먼 거북이가 넓은 바다에서 떠도는 나무를 만날 확률처럼, 인간으로 태어나 서로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것인지 일깨운다.
내게 가장 슬픈 감정을 꼽으라면, 인연이 끊어질 때라고 말할 것이다. 2017년, 장교로 복무하고 전역하던 날, 2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툰 30~40대 남자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숨이 막힐 정도로 꽉 껴안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군 생활은 고되었지만, 함께했던 시간은 너무도 소중했다.
교사로서도 졸업식 시즌이 되어 학생들을 졸업시킬 때, 학교를 옮기며 전근을 앞두거나 휴직을 결심할 때마다,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면 마음이 먹먹해지고 목이 잠기곤 한다. 이처럼 평소에 주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꽃이 진 뒤에야 봄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처럼 지나고 나서야 인연의 가치를 깨닫고 후회하는 날이 올 것이다.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말이 있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 뒤에는 또 다른 만남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영원한 인연은 없음을 받아들이고, 곁에 있을 때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는 헤어질 때 느껴지는 아쉬움과 슬픔,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의 설렘과 호기심 모두를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이 두 감정을 구분하자면, 헤어짐에서 오는 감정은 아련하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움이라면, 새로운 인연에서 느끼는 설렘과 호기심은 생동감 있고 활기찬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감정 모두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임에 틀림없다.
Ep. 1. 대학교 미팅
대학교 2학년 때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4:4 미팅에 나간 적이 있다.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 차례가 되어 소개를 하려던 찰나, 반대편에 앉아 있던 한 명이 나를 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지만, 그 사람이 내 출신 고등학교, 이름, 전공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친하게 지내던 동생의 전 여자친구였고,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남긴 기억이 있다.
Ep. 2. 무등산 정상
군대 가기 전 고향 친구들과 첫 전라도 여행에서 광주 무등산에 올랐다. 정상에서 만난 한 무리의 등산객분들이 우리에게 라면과 막걸리 한잔을 권하셔서 즐겁게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중 한 분이 내 학군단 단장님의 죽마고우임을 알게 되었다. 내 고향은 경상도, 대학교는 서울, 지금 있는 곳은 전라도 광주의 무등산 정상. 그리고 정상에서도 많은 등산객들 중 한 분. 이 모든 우연이 겹치고 겹쳐 무등산 정상에서 단장님과의 통화로 연결된 그 순간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Ep. 3. 장례식장
나는 현재 서울에 있는 학교에 근무 중인데, 우리 학교 선생님의 부친상에 조문하기 위해 대구까지 갔었다. 대구에 지인이 있어서 장례식장에 간 김에 차 한잔하자고 연락했더니, 내 지인도 장례식장을 간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같은 장례식장이었다. 나는 우리 학교 선생님의 부친상 조문을 가는 것이었고, 내 지인은 자기 직장 동료의 외조부상 조문을 가는 것이었다. 정리하면, 우리 학교 선생님과 내 지인의 직장 동료가 삼촌과 조카 사이였던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인연이 있을까...
마무리
인연은 시절에 따라 변하며, 어떤 인연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이선희의 '인연' 가사처럼,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다시 올 수 있을까요.” 지금 곁에 있는 인연들을 감사히 여기며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자. 그것이 우리가 인연을 대하는 최선의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