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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May 06. 2022

나는 미국 대학 꼭 갈래요.(10)

10. 미국 갈 준비


미국 대학교는 합격이 된 이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부족한 면이 있으면 바로 합격 취소 연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엔 더욱 본인의 생활과 남은 학기 성적을 잘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개인 SNS에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인 글을 언급하거나 많이 문제 되는 글을 올리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미국 학제에선 아직 한 학기가 남은 시점에 얼리 합격 통보를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기간의 성적관리도 주의해야 한다. 평점 3.9 정도를 하던 학생이 마지막 학기에 2점대를 받는다면 학생 실력을 의심하게 되니 마지막 성적관리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떤 학교는 AP 과목이나 기타 인증 성적을 다음 해 봄에 더 올려서 제출한다는 조건으로 조건부 합격을 시켜주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 관리도 잘해야 한다.


국제 학생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하게 될 미국 생활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한다. 비자나 서류적인 부분들은 학교에서 이메일로 모두 통보해 주기 때문에 수시로 이메일 체크를 해야 한다. 가끔 이메일 체크를 하지 않아서 더 추가 서류 보내야 하는 마감 기한을 놓쳐서 학교에 사정을 말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니 합격했다고 태무심하게 있으면 안 되고 매일 이메일 체크를 해야 한다.


한국 학생들은 미국 학제와 한 학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학 합격 후 한 학기 정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덕분에 첫 한 달은 마리아가 영어학원 알바를 빡세게 했었다. 한 달 해보더니 너무 힘들다고 공부가 더 쉽다고 했다.그리고 친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우리 가족과도 여행을 다녔다. 반년이 매우 긴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지나가고 미국 출국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토종 한국에서 자란 딸을 미국으로 보내야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건강도 염려되니 말이다.(학교 건강보험이 다 되어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래도 걱정되면 해외 유학생 보험을 한국에서 따로 가입하기도 한다.) 처음 미국 가려고 짐을 사보니 엄마의 걱정만큼 짐이 한 보따리가 되었다. 나중에 줄이고 줄이고 했었지만, 지금 봐도 내 걱정을 가방에 잔뜩 싸 들고 간 것 같다.


미국 대학은 학교 근처에 대형마트촌이 즐비하다. 한마디로 코스트코 같은 마트들이 5,6개 모여있는 타운이 따로 있다. 거기 가면 학교별로 준비 목록도 모두 있어서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갈 필요가 없다. 미국에 없고 한국에만 있는 것들 중 꼭 필요한 것만 준비해 가면 된다.

노트북, 핸드폰 이런 것도 미국 가서 대학생 할인받아 구입하면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갈 필요가 없다. 단 노트, 필기류 등은 한국 제품이 정말 좋은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엄마만 마음속으로 걱정이 너무 되어 2주간 한의원 문을 닫고 마리아 따라 생전 처음 미국을 같이 갔었었다. 그 덕분에 미국 구경을 정말 잘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4년 지나고 보니 그때 마리아가 왜 혼자 미국 입국하겠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친구들 반 이상이 혼자 미국 가는데 아기처럼 자기는 식구들이 따라간다고 투덜 걸렸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혼자 가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냥 엄마 입장에서 그 큰 나라 큰 도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아이가 걱정되었을 따름인 것이다.


내가 처음 대구에서 서울로 혈혈단신 올라올 때도 울 엄마가 비슷한 마음 아니었을까 싶다. 대구란 도시가 너무 답답해서 나고 자라고 대학까지 거기서 보냈지만 더 넓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무조건 서울에서 취직하겠다고 혼자 짐 보따리 하나 들고 올라왔으니 말이다. 3년 전 마리아의 모습과 93년에 상경하던 내 모습이 겹쳐진다.


미국 대학교 갈 준비는 물건만 챙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제는 한해 한두 번만 딸을 만날 수 있으니, 내 마음에 마리아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을 메꿀 준비도 해야 했었다. 좀 남성스럽고 눈물도 적고 씩씩한 편인 나였지만, 조그마한 내 딸이 혼자 미국에서 고군분투하며 공부할 생각에 미국에서 돌아와서도 얼마간은 밤잠을 설치곤 했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자주 영상통화라도 하는데, 카톡에 짧은 답만 하는 딸이 조금 서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공부하느라 너무너무 바쁘니 카톡 답해주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엄마의 모든 걱정은 정말 기우였다. 한국의 아들딸 들은 정말 훌륭해서 우리 마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잘 생활한다. 옛날 어르신들 말씀 중에 집 떠나봐야 철든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반 년마다 한 번씩 만나면 훌쩍 마음이 커버리는 마리아를 만난다. 이번에 마리아가 오면 좋아하는 떡볶이 더 많이 많이 해줘야겠다.




2018년 미국가면서 싼 캐리어들
2018년 8월 뉴욕 맨하탄 택시 안에서~ 야호 미국이다.














사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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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갈 때 싼 마리아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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