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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May 11. 2022

화장품 블로거에서 화학자의 길로


초등학생이 화장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더 크고 나서 하라고 말한다. 나는 좀 괴짜 엄마인 것 같다. 나중에 하라는 말을 하기 전에 "왜 화장하고 싶니?"라고 물어보았다. 딸 마리아는 "예뻐지잖아, 예쁘고 멋있게 변신할 수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잖아."라고 말했다. 그 말이 참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고 멋있어지는 게 싫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참 대화를 한 이후에 우리는 서로 이런저런 내용을 합의했다. 일단 문구점에서 파는 화장품은 성장기 어린이들의 피부에는 나쁜 제품이 많으니 엄마와 같이 성인들 화장품 중에서 순한 제품으로 사기로 했다. 또 아직은 어린 나이이고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가면 아직 딸을 이해해 줄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잘 이해해서, 화장은 집에만 하고, 가끔 엄마와 외출할 때만 하기로 했다.


마리아는 미술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었다. 얼굴이 캔버스가 되고 화장하기는 그리기가 되어 마음껏 자기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퇴근하면 반반 화장을 해서 한쪽은 키메라처럼 한쪽은 연한 화장을 하고 있고, 어떤 날은 눈썹을 종류대로 그려봤다고 사진을 찍어두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다양한 립스틱 색을 연출하기도 했었다. 나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리아는 이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올라가면서 화장하기 보다 화장품 자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화장품을 잘못 써서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화장품, 기타 여러 기능성 화장품 등등 화장품 제조와 원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네이버에 화장품 블로그도 몇 년간 열심히 운영하였다. 그리고 여러 번 네이버 첫 화면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엄마는 화장품 사주는 역할과 지켜보는 역할만을 했다. 그리고 아모레퍼시픽에 한의사 출신 화장품 연구원 조** 선생님과 멘토링 시간도 연결시켜 주었다. 그분을 만나고 와서 이메일로 여러 가지 궁금한 사항을 주고받으면서 더욱더 화장품 관련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고 미래의 자기 꿈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나갔다.


고등학교 때 소논문도 한약재를 넣어 만든 립밤이 입술 보습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본인이 만든 여러 립밤을 친구들이 매일 발라보고 아침마다 보습도를 측정한 후 소논문을 적었다. 좋아하고 관심이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리아는 글로벌 화장품 제조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와 그 꿈을 위해서 미국 대학을 진학 했다. 그래서 미국대학에 입학해서 지금도 그 꿈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만약 엄마인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화장을 못 하게 했다면 이 꿈을 향해 계속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지난주 마리아는 화학 전공으로 미국 대학 대학원 9곳에 원서를 제출했다. 그중 2군데 대학은 또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대학원이다. 그러나 전 세계 화학계에서는 세계 랭킹 안에 드는 곳이라고 한다. 9군데 중 최소 6~7군데는 합격한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교수님 말씀대로 좋은 결과 나오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마리아 자랑이나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관심과 재미를 보이는 것이 부모의 눈에 적합지 않은 것을 원할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무조건 금지하기보다는 왜 그게 하고 싶은지 아이와 대화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타당하다면 마리아와 내가 한 것처럼 각자 상황에 맞게 조절해서 아이가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면 어떨까 싶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된다.


70,80년대에 자녀들이 증권투자를 해보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공부나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고등학생들 중 투자하는 아이들도 있고, 학생들 모의투자 대회도 열린다. 또 그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배낭여행 가겠다고 말하면 아주 이상한 학생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실제로 그런 학생들도 있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 그 세상에서 30년 전 10대와 20대를 보낸 부모들의 기준으로 지금 10대 20대들에게 이거 하라 저거 하라 말한다면 아이들과 사이가 멀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부모들의 기준이 앞으로 20-30년뒤에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마리아가 어릴 때 화장하는 것에 대해 관대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하다 보면 자기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절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었을 뿐이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취향과 결정을 존중해 주고 기다려 주었던 것이다.


앞으로 평균 수명도 점점 늘어서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쩌면 120세나 150세까지 살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모인 우리들은 정말 느긋하게 기다려주자.

자녀를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게 부모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자녀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을 잘 찾아서 하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부모님들이 되시길 부탁드린다.

나도 아직은 믿고 기다려야한다. 마리아가 원하는 화학자가 되어 자신의 길을 찾아서 잘 갈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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