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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Jan 02. 2023

칠백원

[100-2] 백일백장 글쓰기 9기


“할머니 얼른 앉으세요. 버스가 달리는 중에 일어서시면 안 되어요!”

“버스가 서면 일어나세요. 내릴 때 충분히 천천히 내릴 수 있게 기다려 드릴게요.”

버스 기사분께서 걱정 반 짜증 반 섞인 목소리로 연달아 같은 말을 서너 번 반복했다.


그 말을 들은 당사자 할머니 한 분은 들은 둥 마는 둥 반응이 없다. 금방 주차장에 주차했다 다음 역을 향해 막 달리는 버스 안인데  좌석에서 일어난 체  아무 손잡이도 잡지 않고, 울리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만 있었다. 답답할 노릇이다. 기사분은 할머니 때문에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아주 느리게 서행을 하셨다.


나도 다음 정거장엔 내려야 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할머니를 쳐다보다가 어차피 내려야 하니, 얼른 일어나서 할머니 쪽으로 다가가서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니 기사분께서 넘어질까 걱정하시잖아요. 얼른 앉으세요!”

그러자 앞뒤 앉아계시던 다른 승객들도 앉으시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할머니는 “내가 관절이 안 좋아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러자 나와 다른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모두 “그럼 손잡이라도 잡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우리의 성화에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있던 할머니가 손잡이를 잡으셨다.


노인분들 중에 상당히 많은 분들이 자기 생각 속에서만 사시는 경우가 있다. 주위를 살피거나 다른 사람들이 왜 그 이야기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거의 하지 않고, 대부분 자기 생각과 관념 속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세상을 살아간다.


이런 것을 비판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사는데 내가 이러지 말라 저러지 말라 끼어들고는 싶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안전 문제에서는 최소한 지키라는 것은 지키는 게 자기 자신에게 정말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이 할머니는 버스 안에서 안전함보다는 하차할 때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이 느리고 힘들고 아프기 때문에 이 불편함이 싫어서 일어선 체 계셨던 것이다. 기사님이 아무리 내릴 시간 넉넉히 드린 대로 믿지 않고 말이다. 버스기사님들 하루에 이런 분들 많이 만날 텐데 참 고생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버스는 나와 할머니가 내릴 정거장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장바구니 카트를 가지고 계셨는데, 먼저 내리는 케이크 든 젊은 남자 승객이 그 장바구니를 들어드렸다. 그리고 나와 뒤에 내리는 사람들이 할머니 팔을 붙잡고 같이 내려 드렸다.


기사분께서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같이 내린 승객들은 뭔가 도와드렸다는 마음에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각자의 갈 길을 갔다.


집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아차 이럴 수가 갑자기 실수를 한 게 생각났다. 할머니가 버스에서 넘어질까 봐 신경 쓰느라 하차하면서 버스카드 찍고 내리는 것을 까먹었다. 승용차로 운전해서 출퇴근하다 보니 어쩌다 타는 버스에서 간혹 이런 실수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아들에게 톡으로 카드 안 찍고 내리면 벌금이 더 되냐고 물어보았다. 다음 버스 승차할 때 카드를 찍으면 칠백 원이 더 나간다고 했다. 살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오늘 버스 안에서 넘어지거나, 하차할 때 넘어질 수 있었던 할머니를 도와드렸으니 정말 훌륭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나와 버스 승객들이 그 할머니를 신경 쓰고 말을 걸고 도와드리니 버스 기사님은 더 안전하게 운전을 하셨을 게 분명한 것이다.


칠백 원이 결코 잃어버린 돈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날은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칠백 원을 손해 봤지만 버스 안의 평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ㅎㅎㅎ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칠백 원 속상해하며 계속 생각했다면 더 큰 피해가 생길게 뻔하다. 모든 일을 좋게 좋게 생각하면,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 따라온다. 2023년도 모든 일이 술술 풀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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