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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Jan 14. 2023

찐팔이 아저씨

[100-14] 백일백장 글쓰기 9기


'찐팔이 아저씨'

이 별명을 불러보는 게 실로 수십 년 만이다.

경상도 사투리인 것 같고, 어쩌면 비속어인지도 모른다. 경상도에서 70년대에 목발 짚고 다니는 지체 장애인을 비하하고 놀리면서 부르던 단어가 '찐팔이'이었다. '찜팔이' 인 것 같기도 한데 일단 이 글에서는 '찐팔이'로 적겠다.


나의 작은 아버지는 어린 시절 심한 경기를 해서 죽는다고 했는데 한의사인 할아버지가 백회혈에 왕뜸을 엄청나게 많이 해서 소생했던 분이다. 어린 시절 내내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할아버지가 명의라고 말씀해 주셨다. 한의사였던 할아버지는 일찍 작고하셔서, 작은아버지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생업전선에 먼저 뛰어드신 분이셨다. 나중에 시계수리 기술을 배워서 우리가 사는 동네 골목에 작은 시계 방을 운영하셨다.


작은 아버지가 기술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여기저기서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중에 내 기억에 남는 분이 찐팔이 아저씨였다. 그분은 소아마비를 앓은 후 장애가 생겨서 양쪽 목발을 짚고도 보행이 많이 불편하고, 천천히 걷는 분이었다.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70년대에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 유독 심한 시절이었다. 찐팔이 아저씨가 동네 골목에 나타나면 장난기 많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찐팔이 아저씨 나타났네, 바보 병신 왔네."라면서 놀리고 무언가 던지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면 작은아버지가 나와서 아이들을 야단치고 쫓아내 주곤 하셨다.

아저씨는 아이들이 놀러도 절대로 화내지 않고, 같이 장난치고 놀아주시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이분 정말 호인인 게 분명하다.


찐팔이 아저씨는 시험지 백 점 맞아 오는 나를 유독 좋아하셨다. 그래서 시계수리 배우러 오시는 날 내 백 점 시험지를 보면 왕 눈깔 사탕을 자주 사주셨다. 그 시절 간식도 거의 없던 시절 아저씨가 사주는 왕 눈깔 사탕에 현혹되어 내가 시험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오랜 기간 기술을 배우고 나중에 자기의 시계방을 차리게 되었다. 간혹 못 고치는 시계가 있으면 작은아버지에게 와서 맡겨서 고치면서 기술을 더 배워가기도 했었다.


어른들 말씀을 기억해 보면, 그 시절엔 장애를 가진 분들이 직업을 가지기는 무척 어려웠고, 결혼도 매우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찐팔이 아저씨는 자기 가게를 개업하고, 나중에 결혼하고 이쁜 아이들도 생기고 돈도 잘 벌고 잘 살았다고 이야기를 작은 아버지에게 들었다. 아저씨를 아는 분들은 그분의 성실하고 좋은 인품을 알기에 당연히 잘 살 거라고 말씀하셨다.


대구를 떠나온 지 오래돼서 지금 찐팔이 아저씨 근황은 모르지만, 살아계시다면 지체장애가 없는 분들 보다 더 열심히 살고 계실 거라 생각된다. 가끔 내 삶이 힘들 때는 더 힘든 상황에도 극복하고 잘 살아내신 분들이 떠오른다. 그분들의 삶을 문득 오늘은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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