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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언명 Jan 15. 2023

여행하려고 일합니다.

[100-15] 백일백장 글쓰기 9기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이다.
-파울루 코엘류



앞으로 죽기 전까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어서 그런지 집은 열 번도 더 이사했는데, 여행은 자주 가보지를 못했다. 아이들 어릴 때도 이래저래 여러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여행을 잘 가지 않았고, 아이들이 20살이 될 때 지 가족여행은 경주와 북경 여행을 가본 게 다였다.


작년에는 성인이 된 두 아이들의 성화로 드디어 4명 완전체 제주도 가족 여행을 다녀왔었다. 다른 가족들이 일 년에도 몇 번씩 다녀오는 제주 여행을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온 가족이 같이 다녀온 것이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안 가는지 못 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방콕족(?)인 남편 핑계를 대곤 한다. 퇴근하면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서 살고, 영화관 가는 것조차 싫어하며, 숨쉬기 운동을 최고의 운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내가 여행을 못 간 이유를 전부 남편 때문이라고 투덜거리곤 했었다. 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핑계인지 지금은 잘 알고 있다. 내가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젊은 날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5년 전에는 딸이 20살 되어 같이 가족여행 가자고 말했는데 남편이 극구 안 가겠다 해서 3명만 홍콩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홍콩 누아르 영화 세대였던 나는 홍콩을 정말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때 얼마나 좋았던지 모른다. 영화에 나온 곳곳을 다 누비고, 장국영이 마지막 머물렀던 호텔 앞도 가보았다. 하루 2만 보 이상 걸으면서 홍콩 여행에 온통 집중했었다. 그때의 좋은 느낌은 지금도 떠올리면 행복하다.


4년 전 아들이 상해로 여름방학 단기 어학연수를 갈 때였다. 나는 용기를 내서 주말을 이용해 나 혼자 아들이 있는 상해로 갔었다. 일단 무조건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숙소 예매부터 했다. 가서 일정이야 어찌 되었건 용기 내서 표부터 예매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상해에서 3박 4일 동안의 일정은 아들이 동행해 주었다. 그동안 중국 드라마에서 보았던 곳곳을 찾아보았다. 예원 관람도 인상적었고, 또 그 해가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이었던 해라 임시정부 청사도 가서 관람을 했다. 김대건 신부님 세례받은 성당도 다녀왔다.뭔가 숙연함이 마음에서 밀려왔다. 세부계획을 상세하게 짜고 간 것은 아니지만 다녀온 뒤 정말 여러모로 좋았었다. 한국 가까이에 뉴욕 못잖게 큰 대도시가 있는 것도 알게 되고 다음에 또 오고 싶어졌다. 귀국도 당연히 혼자 척척했었다. 그렇게 상해를 혼자 다녀온 뒤 용기가 많이 생겼다.


그 이후 더 자주 여행가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해외여행을 거의 못 가게 되었다. 며칠 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십 년 뒤면 60중반이고 울 엄마가 69세에 돌아가셨는데 나도 14,5년 뒤면 그 나이가 된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는 마음이 생겼다.


다리 떨려서 힘없어서 못 걷게 되면 하고 싶은 여행을 못 다니니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여행을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한의원을 며칠 문 닫게 될 때 경제적 손실이 떠오르고, 다녀온 뒤에 피로회복 등등 갑자기 이런저런 걱정들이 몰려왔다. 마음 다른 한편에서 '너 무슨 생각 하고 있니, 일단 저지르고 생각하자, 왜 이리 너 소심해졌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너무 많은 고민은 행동에 방해만 된다.


그동안 철저하게 계획하고 간 여행은 은 북경과 제주여행 두 번뿐이었다. 나머지 몇 번 간 여행도 대부분 출발 2,3주 전에 후다닥 결정해서 갔었었다. 차 떼고 포 떼고 뭔가 하려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절대로 실천하지 못하게 된다. 용기 내서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올해에는 한 해에 한 번 이상은 한 도시에서 일주일 정도라도 살아보기를 마음먹었다. 한 달은 못 살아도 일주일은 살아보기로 말이다. 한 해의 결심이 아니라 죽기 전까지 해마다 할 버킷리스트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지도를 보면서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나의 신앙이 가톨릭이라 로마를 먼저 생각했다. 그러다가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갈까, 친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갈까, 하와이를 가볼까 등등 생각이 또 모락모락 피어나서 선택을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


마침 우연히 제주항공 특가 기사를 보게 되었다. 타이베이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항공권은 코로나 이전보다 3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그런데 코로나 전 가격으로 특가가 떠있었다. 그리고 요즘 중국어 배우기에 맛 들인 중이라 배운 중국어 연습도 할 겸 타이베이가 좋겠다 싶어서 정말 우발적이고 충동적으로 우선 비행기부터 예매를 했다. 그리고 호텔도 예매했다.


일단 용기 내서 예매하고 그다음 모든 것을 생각하기로 했다. 용기 내지 않고 머릿속으로 만 여행에 대해 계획하니 계획으로만 머무르고 선택 장애로 이어지고 결국은 휴가 날짜가 임박해서 비싼 항공료와 호텔 요금으로 결제하고 여행을 떠나게 되지 않겠는가.


이제 타이베이 여행 날까지 5개월이 남았다. 그날까지 나는 여행하려고 일하려고 한다. 이번엔 멀리 로마까지는 못 가더라도 타이베이에 가서 일주일 동안 그 도시에 온통 빠져들었다 올 생각이다. 대만 국립박물관도 자주 관람하고, 딘타이펑 본점도 가보고, 단수이 호수도 가보고, 지우펀도 가볼 예정이다. 새벽시장의 조식과 야시장의 맛집도 자주 들를 것이다.


결국 이렇게 용기를 내면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그동안은 남편 핑계만 대고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제는 용기 내서 여행하려고 한다. 내 남은 삶이 더 즐겁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더 자주 여행하기 위하여 더 열심히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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