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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Aug 02. 2020

버스에서 바라본 더블린은 다르지 않았다.

더블린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오늘은 항상 앉았던 버스 이층 앞에서 두 번째 자리 말고 일층 뒷문 쪽 두 번째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비가 내리지만 날이 따뜻하고 촉촉이 젖은 바깥 풍경이 너무 예뻐서 바깥 풍경을 보고 싶어서였다. 이층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창문이 수증기로 가득 덮이는데 언제부턴가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스윽하고 그린 스마일 표시는 잘 보이지만 말이다. 처음 앉아본 새로운 자리는 창밖의 더블린이 온전히 눈에 담겼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더블린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것. 큰 오해가 있었다. ‘외국에서 사는 건 이럴 거야.’, ‘유럽 버스는 이런 느낌이겠지?’ 그렇게 여행을 다녔으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건 잠깐의 일상에서 벗어난 데에서 온 현실 미화 현상인 듯싶다.



하나. 아침엔 전 세계 사람들 모두 바쁘다.


내가 탈 버스가 나를 두고 출발할세라 손을 세차게 흔들며 달려오는 모습은 만국 공통이다. 중요한 일이 있는지 네이비 컬러 치마 정장에 구두를 신은 백발 머리의 숙녀분은 꽤 먼 거리에서부터 자신이 최대한 빨리 버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간절하고 간절해서 오죽하면 일부러 벨을 눌러서라도 잠깐 버스를 멈추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빨간색 신호등 앞에 발이 묶인 버스는 숙녀가 한숨을 돌린 후에 정차했다. 불과 오분 안에 일어난 그 사건은 최근 들어 손에 꼽게 긴장감과 스릴이 넘치는 일로 기억된다.


둘. 출근시간은 국가, 도시 상관없이 어디든 교통체증은 존재한다.


한국 차, 일본 차, 프랑스 차, 독일차 막론하지 않고 내가 아는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줄 맞춰 서있는 더블린 고속도로는 아침이 되면 역시나 막힌다. 여기서 문득 드는 궁금증 하나, 막히는 길 선두에 있는 차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조금의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 낸 내 머릿속 막히는 길 선두에 서있는 운전자는 이렇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 시간의 여유가 있는 그 운전자는 기분이 좋다. 오늘따라 머리도 잘 되고, 화장도 잘 먹어서 아주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보통은 먹지도 않는 아침도 오늘은 먹고 싶어 져서 간단히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여유가 있어도 출근길을 지체할 순 없어서 운전하고 가면서 먹기로 한다. 한 손엔 핸들을, 한 손엔 샌드위치를 잡았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곡이 흘러나온다. 어느 때보다 완벽한 아침이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의 표정은 설명 안 해도 상상되리라 본다. 지금 내 표정이랑 같을 듯.


셋. 더블린도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다.


교복의 디자인이 예쁘면 나름대로 어깨가 올라간다. 내가 입었던 중학교 교복은 아주 보편적이고 널리 펴진 자줏빛의 체크무늬였고 디자인이 똑같은 학교가 전국에 다섯 곳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교복은 네이비 컬러로 디자인보다는 재질에 신경을 많이 쓰셨는지 톡톡해서 춥지 않았다. 나의 춘추복과 동복에 대한 추억은 현지 학생들의 교복 입은 모습을 보자마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조금 다른 점은 아마 학교마다 교복의 색만 다를 뿐 디자인은 차이가 없이 비슷했다. 유럽 풍의 체크무늬와 컬러감이 돋보이는 더블린의 교복은 그 나름대로 차분하고 학생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교복 디자인으로 학생들의 기분이 나빠질 일은 없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넷. 더블린 메이크업 고수를 만났다.


제 맘대로 버스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내 집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아이브로우부터 쉐딩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예술이었다. 개인적으로 얼굴에 그림 그리는 것을 특출 나게 못하는 나는 턱이 밑으로 내려가는지도 모르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마치 굉장히 재미있는 내용의 쇼를 보듯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먼저 그녀의 첫인상은 수수한 모습이었다. 머리를 감고 완전히 머리를 감지 않았는지 물기가 서려있었고 얼굴은 새하얬다. 가방에서 작은 파우치가 등장했다. 브로우 펜슬, 뷰러, 마스카라, 블러셔와 브러시, 마지막으로 립밤까지 순차적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니 처음과는 달리 생기 넘치는 여인이 앉아있었다. 마무리까지 끝낸 그녀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좌우를 살피고는 머리를 한번 쓸어 올리는 것을 끝으로 분주한 모닝 버스 메이크업을 끝마쳤다. 이후에는 스마트폰에 집중하며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게 단 십 분 만에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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