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프로젝트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만약 당신에게 내일이 오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겠는가?’
질문을 받자마자 머릿속이 백지처럼 변했다.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해 당황했다. 사실은 영어로 쓰인 질문이 길어서 한국어로 번역하고 이해를 하느라 평소보다 시간이 한참 소요됐다는 표현이 더 솔직한 심정이었다. 옆에 앉은 마리아가 이해했냐고 물었다. 다행히 질문의 의미는 파악한 후라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리아의 원하는 답은 아녔는지 "진짜?"라고 대답하는 억양이 퍽 미심쩍은 느낌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불확실해 보였나 보다. 답을 말해보라고 하기 전에 얼른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착수했다. 욜로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임을 알고 있다. 막말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서 살기에는 짧은 인생이 너무 재미없고 억울하지 않나. 잘 알면서도 평소 즐기며 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모순적이어서 씁쓸할 정도다.
한국은 유난히 바쁜 삶을 지향한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량 또는 베짱이 소리를 듣거나 미래가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미래를 그리지 않는 것은 아닌데 단정짓는 이런 표현은 서로의 다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느낌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기 위해 야근도 불사하며 열심히 일한 직장생활은 결국 번아웃으로 끝이 났다. 오히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소모된다'는 감정은 '열심히 일한 것'이 퇴색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내일을 위해 살지 말자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내일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그러다 얼마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비행기 티켓을 샀고, 어학원에 가서 수업 상담을 받았다.
머릿속으로 과거를 회상하던 무렵, 선생님 Ailish가 다가왔다.
“오늘로 너의 인생이 끝난다면 넌 뭘 하고 싶어?”
“글쎄, 나 한 번도 이런 생각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어.”
“오,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안 해볼 수 있지? 진짜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러게 너무 일만 하면서 살았나 봐, 정말 재미없는 인생이지.”
“인생에 미련이 많나 보네. 세상이 끝나고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걸 보니 말이야. 난 너의 그런 태도가 참 흥미로워.”
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특별히 책임감 강한 척하면서 남들처럼 산 것뿐인데 뜻밖에 삶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마침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살고 싶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니 나는 삶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