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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Jul 23. 2020

친구들의 팩폭은 강하다.

확실한 원 펀치 쓰리 강냉이, 쓴소리는 강하고, 아프고, 무섭다.


이 날은 이리저리서 말로 너무 팩트폭행을 당한 나머지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버렸다.


1.

'제일 바꾸고 싶은 것은?'이라는 질문을 받았다. 얼굴? 몸매? 고민없이 자연스레 이어진 내 대답에 일본인 친구 마미(Mami), 프랑스인 마리나(Marina)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무서운 얼굴로 정색하며 말했다. 그녀들은 네 개의 눈동자로 나를 관통할 듯 강렬한 눈빛을 내뿜었다. 앙다문 입술과 경직된 얼굴 근육은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단호한 자세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지만 마치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처럼 온몸을 잘게 떨었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녀들이 꺼낼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어진 말은 약간 예상했지만 음성으로 들으니 대단한 타격감이 있었다.


"자신이 제일 예쁜 거야. 그래야 하는거야."


짧고 강한 말을 들었다. 나는 자신감이 없고 콤플렉스가 많다. 그렇지 않은 척 연기하고 있지만 떳떳하게 나를 드러내지 못한 채 숨기 급급한 사람이다. 그러다 평소 감춰왔던 치부를 나도 모르게 들킨 기분이었고 결국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마리나가 말했다.


"한국 사람은 예쁜데 부정적인 말로 자신에게 상처를 줘. 너무 기준이 가혹한거 아니야? 힘들지 않니?"


생각해보니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썼고 외관에 중점을 두는 고정관념으로 질문의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고 인정한다. 친구들의 말이 이유는 아니지만 핑계삼아 화장을 안 하기 시작했다. 웃기게도 한국에서도 하지 않았던 화장을 왜 굳이 외국에서까지 하고 다녔나 싶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국인 친구들의 모습을 의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화장하는 애들도 많이 없을뿐더러 나 혼자 열심히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려니 그것 또한 이질감이 상당했다. 단 입술은 바른다. 최소한 아파 보이지는 않아야 하니 장족의 발전이다.



2.

여자들이 하는 대화에는 특히, 서른 넘은 여자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마지막엔 연애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다. 자존감은 있지만 자신감은 없다는 내 말에 프랑스에서 온 야미나(Yamina)가 진심으로 정색하며 이야기했다. "와이낫! 들이대!"


그날 저녁 한국에 있는 친한 언니와 디엠을 주고받으며 똑같은 말을 들었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근데 자신감이 있어야 용기도 낼 텐데... 이런 말을 잇는 걸 보니 답이 없다. 매번 이런 식이다. 그리고 대화는 파생되어 이상형으로까지 이어졌는데... 깊게 고민을 해본 적이 없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다 결국 말을 못 했다. 나란 년...



3.

이상형을 생각하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이미지 메이킹하고 이를 반영하며 살고 있지만 이게 맞는건지, 뭐가 뭔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4.

처음 한국인을 만났다. 아일랜드에도 꽤 한국인이 많지만 내가 다녔던 어학원에는 한국인이 나 말고 딱 한 명 더 있었다. 그 희소성이 더블린으로 떠나오게 된 큰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튼 메시지가 아닌 얼굴을 마주 보고 한국말로 이야기를 이어가니 속이 다 시원한 거다. 그분이 떠나고 옆에 앉아있던 마미가 무슨 대화를 했냐고 물었다. 한국인을 처음 만났고, 한국어로 대화를 하니 속이다 시원하다고 했다. 이때는 어학원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보다 영어가 더 서툴었던 시기였다. 내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당연히 한국말로 구수하게 뱉어냈다. "아오, 속이 다 시원하네!" 누가 봐도 속 시원한 표정의 나를 본 친구들은 뜻도 모른채 표정만 보고 대충 감을 잡더니 각자의 언어로 말을 했다. 대 여섯 개 언어가 있었지만 익숙한 삼 개 국어만 남았다. 일본어로는 心が軽くなった(코코로가 카루쿠낫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영어로 Good riddance. 절대 잊어버리지 많을 말이 생겼다.


나에게 속 시원함을 선사한 남자분은 레벨이 달라서 그런지 그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잘 생겨서 친해지고 싶었는데... 야미나와 언니에게 말했더니 또 혼났다. 맨날 혼나기만 한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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