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보통날과 내 강아지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마도 내 생애 마지막으로 살던 아파트를 떠나 처음으로 주택으로 이사 간 때로 기억한다. 이후로는 한 번도 아파트나 하다못해 빌라에서도 산 적 없고, 내내 주택 생활 중이다. 주택에서의 삶을 말하면 누군가는 돈이 많아서 땅을 사고 근사한 집을 지어 여유롭게 전원생활을 즐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상은 전세에다가 생활은 조금도 여유롭지 않다. 생각보다 부지런해야 하고, 매일 매 순간 부딪히는 불편함을 아무렇지 않게 감수해야 하며, 편안한 일상을 위해서는 이 모든 것에 최대한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다. 이런 사실을 미처 깨닫기도 전 우리 가족은 전원주택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도시와는 떨어진 시골,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을 이르는 사전적 의미와 딱 맞아떨어지는 마을에 터를 잡았다. 단순히 '엄마, 아빠의 도시 생활이 지쳐서'라는 합리화로 단정 짓고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십수 년이 흐른 뒤에야 도시를 떠나온 가장 큰 이유가 '엄마의 건강'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아이가 되어서야 엄마의 병환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죄송스러웠다. 부모님의 결단력으로 우리 가족은 생활 방식에 큰 전환을 맞게 되었다. 자연과 가깝다 못해 자연 속에 살게 되면서 전반적인 삶의 질이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내 개인 생활로 말하자면 일상에 생긴 엄청난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우선 시간적 여유는 필수로 고려해야 했다. 시골처녀에서 도시처녀로 스위치 온 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는 것이었다. 작고 아담한 초록색 마을버스의 배차 간격은 한 시간. 귀신같은 타이밍에 도착하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부지런을 떨어야 했고, 이를 놓치는 순간 하루는 엉망이 되기 일수다. 고로 약속 시간보다 오히려 한두 시간쯤은 일찍 도착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시골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참 이르다. 해가 지지 않는 도심의 밤과는 달리 넓은 밭의 작물이 햇볕을 받고 쉬어야 하는 시골의 밤은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다. 깜깜한 밤 좁은 길을 걸어 집을 찾아가는 일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서둘러 끊기는 막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발길을 재촉해 집으로 향한다. 열 한시가 좀 넘은 시간, 항상 집 대문을 여는 시간이다.
출퇴근을 비롯해 친구와의 약속이나 쇼핑 등 개인적인 시간에 이르는 모든 이동 시간은 평균 한 시간 반의 여유를 잡고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얻게 된 사색의 시간 동안 눈을 감고 명상하는 듯 잠을 청하며 이동의 피곤함을 달래기도 하고, 주변을 살필 시간 없이 바빴던 일상 속 공백에 감사하며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한다. 높게 솟은 회색 빌딩 대신 구름 걸린 언덕과 계절마다 바뀌는 야트막한 산을 바라보면 긴 이동 시간의 치명적 단점은 금방 묻히게 된다. 넘실거리는 자연으로 시골에 사는 삶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이다.
그 밖에도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과 직접 키운 고추, 토마토, 상추 따위를 수확하는 즐거움, 음식이 배달되지 않은 동네이다 보니 대부분 음식은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자연스러운 일, 편의점이나 카페는 걸어서 갈 수 없으니 군것질은 포기하는 점, 야생동물이 마당에 뛰어다니거나 방에서 반딧불이 불을 밝히는 날, 맑은 달 아래 소쩍새가 구슬프게 우는 소리를 듣는 것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내게는 당연한 일상이 다른 이에게는 신기한 경험이라는 것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 보통의 날들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복잡한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여백 가득한 일상에 새로움을 느껴서가 아닐까? 치열한 삶을 살며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이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매일의 나날들은 특별함 없이 색을 잃어 간다. 스마트폰 액정과 컴퓨터 모니터 속 세상에 의지하며 사는 것이 보통의 삶이라고 여기게 된 요즘,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생활하고 적막한 산 아래서 새소리를 들으며 똘이와 함께 포슬포슬한 풀밭을 거니는 일상은 너무 특별해 보인다. 여기 나의 일상 속 단면을 적는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날들이다. 그 보통 속에 똘이와 나의 가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