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오미 Feb 05. 2020

'엄마는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

존재만으로도 당당한 이름이다.

엄마는 왜 뜨게질을 안해요?

아이가 만화를 보다가 내게 물었다. 저 만화의 엄마는 뜨게질을 잘 하고, 그것을 팔고 돈을 벌기도 한다. 만화의 엄마들은 뜨게질도 하고, 목도리도 만들고, 바느질도 하는데 엄마는 왜 그런걸 안하냐고 아이가 내게 묻는다.


"엄마는 모두 뜨게질을 잘 할거라는 고정관념을 버려" 라고 나는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손재주가 없고, 더욱이 엄마라서 뜨게질을 배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이는 TV속 세상의 엄마와 자신의 엄마가 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과를 깎아주던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참 좋겠다. 사과 깎아주는 엄마가 있어서."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더 잘해주지 못함에 힘들어한다. 모든것이 엄마의 책임 같고 그 책임이 너무 무거워 늘 아이에게 미안해 한다.


워킹맘이면 이 죄책감은 가중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함에, 조금 더 신경 써주지 못함에 전정긍긍대며 아이에게 다른 보상을 찾아주기 바빠진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미안해함을 당연히 여기고 나아가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된다. 엄마는 자꾸 위축되어 때론 엄마의 역할에 짓눌린 느낌마저 든다.


나는 처음부터 그런 엄마의 역할을 버렸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척 하면서 죄책감을 지고 풍부한 모성애가 있는 척 연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릴때 엄마의 따듯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그런건지, 원래 성격이 쿨한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그냥 있는 내 모습으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여느 다른 엄마들과 많이 달랐다.


처음에 아이는 당연히 이게 다른지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고, 다른 엄마들을 보게 되면서 엄마가 좀 특이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이는 얘기한다. "엄마가 나의 엄마라서 참 감사해요."


모두가 생각하는 엄마의 역할을 버렸다고 해서, 아이와 관계가 틀어지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이가 모든 사람들이 고개젓는 사춘기의 길목임에도 불구하고 사이가 좋다.


엄마와 자녀 사이이지만, 서로를 위한 지나친 희생과 순종 보다는, 적당한 거리와 존중이 훨씬 관계를 돈독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다 해줄수록 아이는 스스로 해야할 능력을 잃어간다. 모든 것을 다 해줄수록 아이는 감사함을 잃어간다.


엄마가 '사과 깎아주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것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이것을 표현하는 엄마는 또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는 ~~해야 돼' 라는 모든 말은 다시 한 번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엄마이기 이전에 우리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을 버리고 '엄마'라는 역할에 가두면 필시 탈이 나게 되어있다.


엄마는 무얼 해줘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엄마'라는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존재이다. 엄마들이여! 당당해지라! 그리고 아이에게 그 당당함을 즐겁게 표현하라!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몰라준다고 서운해 하기 전에, 먼저 표현하자. 그리고 정해놓은 엄마의 역할이 아닌, 나 그대로, 엄마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억울하다고 '욱'하면 내가 화를 당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