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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오미 Feb 29. 2024

마음은 미니멀, 육신은 맥시멀.

나는 맥시멀리스트다. 정리에 취약하다. 공간만 있으면 쌓아놓기가 취미이다.


남편도 맥시멀리스트다. 정리에 취약하다.


내가 볼땐 정리가 엉망인데, 자기만의 질서가 있다고 한다. 10원짜리 동전 하나까지도 어디있는지 다 알고 있다나?


여기까지는 거의 공통점인데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나는 날을 잡으면 물건을 몽~땅 갖다 버리면서 정리를 하곤 한다. 일년에 몇 번 삘이 오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데 남편은 이럴때 물건 버리기를 힘들어 한다. 도저히 못버리겠다며, 자기 없을때 나 혼자 버리라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신혼때 내가 대청소를 하겠다며, 집 물건을 다 갖다버리다가 남편 시계까지 쓸어서 갖다버린 전적이 있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삘꽂혀 버리는 날이 오면 가재미 눈을 뜨고 지켜본다.




고등학생인 딸 방은 확장이 되어있는 방인데, 우리 전의 집주인이 확장공사를 해 놓은 방이었다.


하지만 바닥공사가 잘못 되었는지 겨울에 보일러가 잘 돌지 않아 방이 냉골이 된다. 외벽 끝쪽인데 바닥까지 차니 그 방은 겨울이면 사람이 지낼 수 없다.


그래서 한겨울 석달정도는 다른 방에서 지낸다. 이제 날이 따듯해져서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안쓰는 동안 그방에 짐이 쌓여 창고가 되어있었다.


얼마전 일년에 몇 번 없는 그 날을 잡고 2~3일 매달려 정리를 싹 했다.


문제는 딸물건 못버리는 남편의 피를 탔다는 것이다.


정리 첫 날 내가 한 것은, 나는 앉아있고 딸이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버려야 할 것을 쓰레기봉투에 넣은 것이다.


난 앉아서 무얼 했느냐.


"이건 버려야 하나?" 딸이 물으면, 나는 "버려! 버려! 다 버려!" 라고 앵무새처럼 말했다.


그렇게 쓰레기 몇 봉지에 자신의 물건을 다 버린 딸에게 남편이 다가와 안아주었다.


딸이 "히잉~~~" 우는 소리를 내길래 나는 '정리하느라 몸이 힘들었나 보구만' 생각하던 찰나, "내 추억을 다 버렸어잉~" 예상치못한 대답이 나왔다.


남편은 "내가 그마음 알지" 하면서 토닥토닥거렸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당황스러워, "아니, 몸이 힘들다는 얘긴줄 알았는데, 물건을 버린 마음이 힘들다는 거야, 지금??" 하며 웃었다.




첫 날 저렇게 다 버린 이후, 나머지 정리를 주말에 나 혼자 다 했다. 주말에는 딸이 학원에 가있기 때문이다.


왜이렇게 책이 많은지, 무거운 책들을 이방에서 저방에서 옮기다 보니 어느새 고질병인 허리가 아파왔다.


이렇게 정리를 크게 한 번 하고 나면 한 일주일은 한의원에 다닌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서 남편은 나를 불나방이라 부른다.(혹은 도라이라고...)


딸이 방을 조금이라도 어지럽혀 놓으면 냉큼 뛰어가서 생색내며 이야기 한다.


"이거 엄마 허리랑 맞바꾼 방이야. 깨끗하게 써"



나이가 들어갈수록 짐을 줄이고 간소하게 살고싶다.


이런 내 소망과는 달리 남편은 또 요즘 식물키우기에 맛이 들려서 이것 저것 온갖것을 주문해대고 있다.


우리...미니멀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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