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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오미 Mar 01. 2024

쌀벌레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쌀이 있다

4개월간 쌀벌레와의 사투를 끝내며...

작년 11월쯤부터 부엌 싱크대에 쌀벌레가 스멀스멀 나타났다.


쌀벌레는 쌀통에 사는것 아닌가? 우리집 쌀통은 김치냉장고에 있는데???


처음엔 '곧 없어지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갯수가 많아졌다. 수명이 길지는 않은지 싱크대엔 죽어있는 쌀벌레들이 쌓여갔다. 주방 바닥에도 기어다니는 녀석들이 생겨났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나타나는 걸까? 이사 올때 싱크대를 새로 하지 않아서 싱크대 나무가 오래되서 그런걸까?


싱크대 벽 뒷쪽으로 타고 들어오는걸까???


예전 복도식 아파트 살때 주방 싱크대 벽 뒷쪽에서 타고 들어오는 바퀴벌레들 때문에 세스코를 부르고, 주기적으로 관리받던 때가 생각났다.


그땐 싱크대에 있던 그릇을 쓸때면, 꼭 물에 한 번 헹궈서 쓰곤 했었다.


쌀벌레가 나타나면서 이 버릇이 다시 생겨났다.


남편은 인터넷을 찾아보고 피톤치드를 물과 섞어 싱크대에 뿌렸다.


쌀벌레 퇴치제를 찾아보았지만, 쌀통에 넣어두는 종류뿐, 이렇게 열린 공간에 돌아다니는 쌀벌레를 퇴치하는 방법을 우리는 찾지 못했다.


점점 쌀벌레 노이로제에 질려가고 있을 무렵,


나는 가스레인지 근처 싱크대 상부장에 각종 가루(밀가루, 부침가루 등)들이 모여있는 그곳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그곳을 정리해달라 부탁했다.


우리집 요리는 주로 남편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엇을 버려야 할지 남편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부탁하고, 한 이주가 흘렀을까. 정월대보름이 되어 남편이 그곳에 남아있는 찹쌀을 쓸 수 있을까 싶어 찹쌀에 손을 집어 넣자 남편은 경악했다.


찹쌀봉지에 찹쌀 반, 쌀벌레 반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이것좀 보라고 했지만, 난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거기인것 같다고 하지 않았냐며, 얼른 갖다버리라고 했다.



쌀벌레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 주방이 이래야지! 집이 이래야지!!! 순간 순간 너무 행복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렇게 쌀벌레가 싫으면서 거기인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거길 파헤쳐보지 않았을까?


어리석다, 어리석어.


기억하자.


쌀벌레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쌀이 있다. 찹쌀일수도 있다.


쌀벌레가 없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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