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서스를 읽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몸이 지쳐서일 수도 있고, 마음이 복잡해서 일 수도 있다. 혹은, 변화가 두려워서.
그럴 땐 조용히 한 발 물러선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멈춰 있어도 계속 흘러간다.
그 흐름 속에서 작은 금이 가기 시작하고, 그 금을 모른 척하는 사이, 균열은 깊어지고 만다. 그제야 비로소 '돌이킬 수 없음'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당시, 유대인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한 젊은이가 절망하며 외쳤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며 울부짖었다. 그때 한 노인이 조용히 말했다.
"바로 그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 걸세"
얼마 전 아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엔 그 노인의 말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단면을 너무나도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함을 마주하고도 침묵했던 순간들, '모른다'라는 말로 무심함을 정당화했던 날들. 그 모든 방관의 시간들이 결국은 또 다른 불행을 키워왔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실을 마주하고 있으니까.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파괴된 환경, 거짓 정보는 진실을 삼키고, 부당한 권력은 곳곳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한걸음 물러나 관망하는 태도를 택한다. "그건 내일이 아니니까" "지금 당장은 괜찮겠지"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변화의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낸다. 마치 작은 불씨쯤은 저절로 꺼지겠지 하며 외면하듯이.
이제는 AI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삶의 방향까지 영향을 주는 시대다. 우리가 읽는 글, 보는 영상, 들리는 이야기들. 그 안에 점점 더 많은 AI의 흔적들이 깃들고 있다. 우리는 그 이야기 속에서 사고하기도 하고, 감정도 느끼며, 결정을 내리게 된다.
"컴퓨터는 우리를 죽이기 위해 킬러 로봇을 보낼 필요가 없다. 인간들이 방아쇠를 당기도록 조종하기만 하면 된다." (p.310)
하라리가 경고한 것처럼, AI의 위험은 눈에 보이는 공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의 사고를 조종하는 데 있다. 정보를 통제하는 이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고,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들이 만들어놓은 흐름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마치 서서히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정말 자신의 선택이 될 수 있을까.
유발하라리는 인간은 실수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고, 필요하다면 수정하며 함께 나아가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태도가 모여야만 사회는 스스로를 정화하고,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거창한 구호보다,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세,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내딛는 한걸음, 그런 소소한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
"나 하나쯤은 가만히 있어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너무 익숙해졌지만, 사실 세상은 늘 그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선택이다. 우리는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세상이 굴러가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이 선택이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시간이 지나야 만 알 수 있겠지.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