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걷는독서를 읽다가
많은 이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책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며, 결국 더깊이 있는 사람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
왜냐하면 깊어진 삶이란, 결국 내 안의 나를 더 자주 들여다보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깨어난 질문으로부터, 조금씩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책을 읽다 보면, 유독 오래 마음에 머무는 문장들이 있다.
그 짧은 문장이 질문이 되어 며칠이고 마음을 맴돌고
그러다 문득, 묻어 두었던 감정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기도 한다.
타인의 이야기가 어느새 나의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
그때의 감각은 조용하지만 분명하다.
나를 알아가고,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시간.
단순한 정보 습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독서를,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조용한 여행이라 부르고 싶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낯선 마음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
그 고요한 순간들이, 언제나 나를 선명하게 비추어준다.
며칠 전, 짧은 명언들로 이루어진 박노해의 걷는 독서를 읽다가 오래 곱씹게 되는 문장을 만났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
처음엔 조용한 위로처럼 다가온 문장이었다.
삶이 무거웠던 만큼, 그 사람이 딛고 간자리는
누군가에게 길이 될 수도 있겠구나.
흔적이 곧 이정표가 되는 일도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문장은 또 다른 결로 내 마음에 남기 시작했다.
깊은 발자국이라고 해서 언제난 좋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통이 너무 컸을 때, 그 끝에서 지혜롭지 못한 선택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남긴다면 그건 이정표가 아니라 그림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발자국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그 안에는 감정이 조용히 내려앉고,
망설임과 결심, 책임 같은 것들이 천천히 스며든다.
때로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떤 방향을 가리킨다.
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에, 어떤 자국을 남기고 있는 걸까.
그 자국은 누군가의 걸음을 조금 더 따뜻한 쪽으로 이끌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늘 책을 읽다 보면 자라나게 된다.
책 속 문장들은 내 안에 머물며 이렇게 삶의 속도,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 속도와 방향은 삶을 이해하는 시선을 키워주었고, 그 덕분에 덜 흔들리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게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건
거창한 결심 때문이 아니라,
조용히 스며든 사유들이 마음의 풍경을 바꾸어 놓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끄적인다.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내면의 풍경을 정성껏 가꾸어
그 위에 산뜻한 발자국 하나를 남기기 위해서.
#책읽는이유 #걷는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