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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차원 Aug 05. 2024

대화의 도마에 올려진 타인은 어김없이 소홀하게 다뤄진다

1. 마지막 말을 주고받는 게 끝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왜 관뒀는지 알아?”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대학에서 회사로, 그리고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한 단계처럼 나눠지는 삶의 과정을 지날 때마다 존재도 몰랐던 이들이 여지없이 일상으로 들어온다. 다만, 그 속에 섞인 악연을 첫눈에 구별하기 어려운 까닭에 대게는 관계에 데인 경험이 쌓이고, 마음 나눌 이의 잣대는 높아만 졌다.


그렇게 탄생한 엄격한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가깝게 마음에 들여 속생각을 주고받던 친구가 회사를 관뒀다. 두어 달 전부터 관두니 마니하며 저녁마다 나를 괴롭히더니, 정작 조용했던 저녁 다음날 사직해 버렸다.

괜찮냐며 연락해 보지 않았던 내가 자신의 그 고민거리를 귀찮게 여겼다고 느낀 것인지, 마치 그것에 심술이 난 것처럼, 친구는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담당 이사실을 찾아가 사표를 던졌다.

회사에서 나는 3년 차, 친구는 5년 차였다.


친구는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속 깊게 친절했고,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몇 가지 악취나는 소문에 시달릴 때도 웃어 보였다. 이런 곳과는 맞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혼자 커피 마시러 다녀야겠네.’


그네의 부서로 찾아갔다.

발까지 덮는 짙은 브라운의 통 넓은 슬랙스에 아이보리 빛깔이 도는 소매 긴 블라우스를 걸치고, 칼라 옆으로 단정하게 묶고 다니던 스카프는 풀어헤친 채로,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친구는 혼자 짐을 챙기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사무용품을 박스 속에 차곡차곡 쌓아 넣는 소리 말고는 가끔 마우스 소리가 들릴 뿐이다.

이 침묵은 비겁하다.

‘너무하네.’

동료 직원의 마지막을 모르는 척 할 뿐인 소위 그들의 동료애 속에서 금세 속이 나빠진다. 다행히 나는 타사의 직원, 악한으로 유명하던 모 과장, 심지어 클라이언트와도 싸웠던 게 소문난 무개념한 사원이었고, 이들처럼 눈치를 살피느라 마음을 숨기는 성정도 못되었다.

“줘요, 들어줄게요. 차는 가지고 왔어요?”하고 전부가 들리게 말하니, 그이는 나지막하게 택시를 탈 생각이었다고 한다. 유쾌한 퇴사는 아니었지만 기죽은 모습에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이 시간에, 여기에서 이거 들고 택시 타면, 안 좋게 봐요.”

기다려보라고 한 뒤 케비닛에 두었던 피트니스용 더플백을 가져와 물건을 옮겨 담았다.

친구를 빈손으로 보내고 저녁에 보자 인사한 뒤, 더플백을 다시 정리하는데 족히 1년은 더 먹을 것 같은 영양제와 전공 서적 몇 권이 있었다.


한동안 비어버린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 한 명의 공석이라는 의미 이상의 감각을 홀로 느끼는 것만 같은 억울함에 서운하던 차에, 직원 중 하나가 친구 사정을 가볍게 꺼내 들었다. 멀끔한 젊은 여직원이 갑자기 퇴사한 사건은, 이들에게 시간 때우려 아무렇게나 말해도 좋은 정도의 에피소드였다.


타인의 사정을 이다지도 소홀하게 대하며, 마치 이 조직에 남은 자신들이 승자인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은 승리감에 도취된 이들의 대화에서는 악취가 났다.

미워하기부터 한다. 타인을 삼켜, 자기만족으로 삼으려는 태도에 적개심이 생겼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이가 나와 둘이서 술 한 잔씩 할 정도로 가깝다는 걸 이 대화의 도마에 둘러앉은 이들은 모르기 때문에. 진실을 위한 변명의 시도조차 이 어리석은 대화에서는 그들이 입으로 꺼내놓은 쓰레기에 섞일 뿐이기 때문에.


“더운데, 들어가죠.”

좀 이르지 않냐는 이들의 틈에서 일어서니, 겨우 의미 없는 대화가 그친다. 그이가 왜 회사를 관뒀는지, 애초에 그들에게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이를 씹어대며 승리감에 도취되는게 이런 대화의 목적이다. 

저급한 추정에 노출된 만큼 감정이 오염된다. 이런 시간이 아깝다.


사소한 강박이 하나 있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걸 별안간 알게 됐다.

대화의 마지막에는 꼭 내 성의 없는 인사가 남아야 한다는 것인데, 누군가와 주고받는 카톡에도, 헤어질 때의 인사에도 마지막에는 꼭 내 말이 남도록 했다.

마지막 말을 주고받는 게 끝나지 않는다면, 끝내서는 안되는 대화일 수도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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