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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차원 Jun 10. 2024

카페에서 앉는 순서

적당한 거리가 매너가 되는 곳

대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도 카페는 조금 어려웠다. 주머니 사정도, 시간적인 여유도 부족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 작은 휴식이 꼭 필요한 일상이 된 후로는 매주 서너 번을 가고 있지만, 이전의 어려웠던 감각이 남은 탓인지 카페에서는 거리감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카페에서는 적당한 거리가 매너다.

여기서는 타인의 공간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영역과 타인의 신경이 겹치지 않는 곳에 자리 잡는 소소한 에티켓이 필요하다.

그래서 카페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모양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게 창가나 구석부터 채워지기 시작하고 제일 마지막에야 가운데 테이블이 선택된다. 그 들어차는 모양이 조금 쓸쓸해 보인다.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려는 모양은, 엄마아빠가 ‘아무나 따라가면 큰일 나.’하고 아이에게 주의를 주던 이유 이해하게 된 아이들이 스스로 사람을 조심하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이 그리워 누군지도 모를 타인의 존재에 기대보려 선택한 곳이 카페가 아닐까.

그들에게 조금의 연민과 동료애를 느낀다.


그러고 보면, 외출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쉴 수 있는 이는 강하다.

적어도 나는, 혼자 있을 때면 드는 사막을 홀로 걷는듯한 감각이 싫어 카페라도 찾는다. 모래언덕 넘어 멀리 누군가가 보이는 그 작은 구원의 순간을 기대하며 여기저기 떠돌다보니, 누군가 말을 걸어오기라도 하면 금방이고 친구가 되어버린다. 이걸 두고 외향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혼자인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카페 벽 편 자리는 뒤늦을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한 가운데 빈 테이블에 앉았다. 다른 이와 곧잘 어울리는 종류의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시선을 받아내는 이런 자리에서 혼자 오래 버텨내기는 힘들다. 다만 그날은 몸살이 나 있던 까닭에 달리 옮기지 않기로 했다.


계절이 섞이면서 하루에도 몇 번 차고 더운 게 반복될 때면, 익숙해지기 전에 폐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어김없이 목을 긁어 지나며 몸살을 일으켰다.

다만, 며칠째 종일 집에만 있었더니, 이제는 몸살에 누워있는 것인지, 누워만 있어 더 몸살이 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결심이 선 때에 서둘러 태블릿을 챙겨 카페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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