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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차원 May 28. 2024

길치

우리는 지각생 하자

‘ ...응?’

최근에 유명해진 한 카페의 본점이, 포항에 있다고 해서 나선 참이었다. 한 시간 정도 잘 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조금 전까지 도착 30분 전이라던 내비게이션에 도착시간이 늘었다.


동해안은 해수욕장이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상당 부분이 절벽이다.

처음 출발할 때의 예상 도착시간을 훨씬 지나 도착한 카페는 동해안 절벽에, 그 어느 겨우 가능한 부분에 얹혀 있었다. 바다로 통창을 내고, 옆으로 잔디정원이 작게 딸려 있는 그곳은 그 삶이 표정으로 얼굴에 깊게 자리 잡은 사람들로 촘촘했다. 빈 테이블이 나기까지 조금 기다렸다.



주차장은 여유로웠지만 주차는 조금 답답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잘 도착하는데 왜 나더러 길치라고 하지? 라며 으쓱함에 괜히 당당하고 리듬감 있게 운전석의 문을 쿵 하고 닫았다.

그런데 카페 입구까지 겨우 100걸음 남짓 걷는 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도착을 문제로 삼는 게 아니구나.’


그러고 보면 한 번에 길을 찾는 경우가 잘 없었다. 지하철이나 건물에서 겨우 밖으로 나왔나 싶으면 곧잘 목적지 반대편으로 걷고 있었고, 길이 애꿎게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방향을 바꾸면 그대로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고는 했다.

우회전하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도 그 지점을 찾지 못하다가 직진해 버리고는 스스로 길을 찾아보겠다는 뱃심을 자주 부렸다.


애초에 목적지에는 한번에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차를 운전해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친구는 1시간 20분이면 겠다 하지만, 나는 2시간 걸린다고 한다. 어김없이 2시간이 걸린다.

오늘도 바다를 목적지 삼아 출발했지만 어디서 길을 잘못 든 것인지, 어떤 산업단지 안으로 들어가 좌회전만 몇 번 하다 운 좋게 길을 찾아놓고, ‘이것 봐, 길 잘 찾잖아.’ 하며 허공에 콧대를 높이 참이다.



기업에 처음 입사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생 참 지루하게 풀린다.’

길면 30년, 적어도 20년 이상을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 그 사이에 결혼, 출산, 육아를 할 수도 있고, 60세 쯤 은퇴하면 그게 일생인 인생이다. 그럼 그게 전부야?


이 생각이 건방져 보였는지 인생은 지루하지 않게 꼬였다. 길을 틀릴 때마다 인생은 꼰대가 되었다.


다만, 이제 이 엄격한 꼰대에게 한번 묻고 싶다.

길을 잘 찾아 효율적으로 멀리, 그리고 빠르게 가는 게 좋은 인생이냐고. 구불구불하게 가며 온갖 경험 끝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달하는 것도 좋다고 해주면 안되냐고 말이다.


나는, 길을 잃어도, 다분히 나쁘지 않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경우가 많았거든.


계획과 다르게 일찍 퇴사하게 됐지만, 그 사람과 처음 데이트를 할 수 있었고, 전공도 아니었던 법학을 뒤늦게 공부해 책도 한 권 냈다. 물론 이걸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직장을 다니게 되어 고향으로 내려왔고, 그 사람과 끊어질 뻔한 실에 실을 덧대어 밧줄엮어낼 수 있었다.


베네치아에서는 배를 잘못 탔던 탓에 리도해변을 우연히 알게 됐고, 협재 해수욕장인 줄 알고 도착한 곽지 해수욕장의 용천수는 정말 바닷물보다 덜 짰다.


무엇보다, 잘못 든 길을 실패한 것으로 여기기엔, 그 헤매는 과정마다 호흡한 모든 순간들이 너무 값지다.



그러니깐 말이야.

기왕 잘못 든 길이라면, 한 걸음에도 많은 걸 보고, 감각을 열어 느끼면서, 천천히 가도 좋지 않을까?


우리는 목표에 닿는 것보다, 그 순간을 애쓰며 헤쳐나가던 그 사랑스러운 모양에 의미에 두자. 길 좀 잘못 들 수도 있지. 그러면 어때.

나는, 너도. 우리는 길치라 엉뚱한 기회에 닿기도 하는 거잖아.


혹시 늦더라도, 우리는 그냥 지각생 하자.

조금 길을 잃은 것으로 자신을 탓하지 말고, 그저 의외의 발견에 이르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즐거움에 닿기도 하면서, 그렇게, 늦더라도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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