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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차원 May 09. 2024

이번 서사는 이렇게 끝난다

"안녕하세요?"

하고 회사를 나오는 길에 인사해오는 가 있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아, 큰일 났다. 누구지?'


다른 기억력은 좋은 편인데, 유독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

다행히 이번에는 상대방이 나를 잘 못 본 것 같았다.

'사람 잘 못 봤나보네. 나 같다.'

그래서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서 나아가, 머쓱해 하는 상대방에게 여유있게 살짝 한번 웃어보일수도 있는거다.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자주 모른척' 하는 정한 사람이다.

못알아봤다하는 허튼 변명꾼이기까지 한데, 이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감수하더라도, 사랑하는 이마저 가끔 못알아보는건 머릿 속이 꽃밭이라 그렇다는 내 MBTI 핑계를 대더라도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다.


한번은 약속 장소에서 그 사람을 기다리는데, 내 앞 열 걸음에 이를 때까지 못알아더니,

"왜 아는 척 안해요?"

"미안해요, 못알아봤어요."

"계속 봤으면서."

"어떤 예쁜 분이 이쪽으로 걸어오길래 시선이 가더라고요."

어쩌다 본의 아닌 플러팅이 하고 있기도 했고,


"오빠! 왜 못본척 해."

"못 알아봤어."

"또 딴 생각하고 있었지?누구 생각했어?"

하고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사실 좀비 사태 같은 걸 상상하고 있긴 했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휘두르지 않고 가능한 고개를 적게 돌리며 다니고 있기는 한데, 그럼에도 모습을 잊어버리는 건 어쩔수 없었다. 1년 정도 오랜만에 만난 이는 어김없이 잘 알아보지 못다.


"그러니, 너는 매일 봐야겠어."


하고, 앞으로의 일상에서는 하루 1분일지라도, 매일 얼굴 보며 하루씩 기억해가려고 했는데,  서사는 틀려먹은 것 같다.


모습이 떠오르지 않으면,

모습도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그 모습을 기억했던 것까지 그리워한다.

바보같이 억울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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