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곱 살이었을 무렵.
부모님은 하루 종일 장사를 하느라 늘 바쁘셨다. 그래서 눈을 뜨면 아침밥을 재빨리 먹고 골목으로 나와 장사하는 집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친구의 누나가 아이들이 많은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내게 꺼냈다.
"어? 이 잠바, 청바지 내 건데. 네가 왜 내 옷을 입고 있어? 빨리 벗어."
라고 말하며 내 옷을 잡아당기며 벗기려고 했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언니, 아니야. 이 옷 우리 엄마가 사준 거야..."라고 말하며 나는 필사적으로 옷이 벗겨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많은 친구들 앞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된 나는 금세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일로 기분이 너무 상해서 그날은 친구들과 일찍 헤어지고 가게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수현이 언니가 친구들 앞에서 내 옷을 자기 옷이라고 벗으라고 해서 너무 창피했어. 그 언니가 잘못 알고 있는 거지?"
"..."
이상하게도 엄마는 대답이 없으셨다.
그 당시에는 엄마가 왜 대답을 안 하시는지 어린 마음에 이해가 안 되고 답답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다시 물어보지는 않았다. 엄마가 대답을 못하신 걸로 보아 그 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옷을 얼른 벗어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 후로는 그 옷을 다시는 꺼내 입지 않았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엄마에게 그때의 일을 기억하시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도 나처럼 그날의 일이 마음에 상처가 되었는지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다. 그 옷은 그 언니의 옷이 맞다고 하셨다...
나는 결혼을 해서 친정 엄마와 똑같이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 세 살 터울의 남매를 낳았다. 아이들을 기르다 보니 어린 시절에 왜 엄마가 내 옷을 주변에서 얻어서 입혔는지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큰 아이는 남자아이라 주로 파란색 계통의 옷을 자주 입는 편이다. 그리고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보기에 깔끔한 청바지와 셔츠보다는 운동복과 티 종류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이다. 그렇다 보니 둘째인 딸이 커갈수록 오빠의 파란색 옷과 운동복을 물려 입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둘째는 핑크색을 제일 좋아하고 오빠와는 달리 입었을 때 편한 옷보다는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거나 예쁜 디자인의 옷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주위에서 딸아이의 옷을 물려주신다고 하면 우선은 받아와서 옷 상태나 스타일을 보고 추려서 입히고 있다.
며칠 전, 봄비가 하루 종일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우리 아이들을 평소에 예뻐해 주시는 할머님이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 되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엄마 가게로 여자아이의 옷을 한 보따리 가져다주셨다. 엄마는 궂은 날씨에 옷을 가져다 주신 할머니에게 너무나 감사해서 가게에서 파는 과일을 골고루 챙겨서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건넸다. 나 또한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아이에게 마음을 써주신 그 할머니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그다음 날. 날씨가 화창해지자 엄마 가게에 있는 옷을 가지러 가게로 갔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엄마는 옛날에는 내 옷을 얻어서 입히더니 이제는 하나밖에 없는 손녀한테도 옷을 얻어 입히네."
어린 시절 옷을 물려 입어서 아이들이 많은 곳에서 창피를 당한 7살의 내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었나 보다. 그때의 서운함 마음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지 엄마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어 버렸다.
엄마가 내 얘기를 듣고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엄마는 화는커녕 미안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셨다.
"원래 옷을 얻어 입히면 오래 살고 좋데..."
나도 안다. 엄마도 우리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주고 싶다는 것을... 친정오빠의 아이들이 클 때만 해도 장사가 지금보다는 잘 되어서 엄마는 조카들에게는 새 옷을 여러 벌 사주셨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는 경기가 계속 안 좋아 장사가 안 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새 옷 한 벌 사줄 형편이 못 되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철없이 엄마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었다.
"..."
못난 나는 엄마에게 끝내 사과를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 그 말을 하지 말걸. 왜 했지... 바보 같아... 엄마가 많이 속상하실 텐데...' '친정엄마도 마음 같아서는 손녀에게 예쁜 새 옷을 사주고 싶으셨을 텐데. 늘 형편이 고만고만하니 그랬을 텐데...' 못난 딸이 어린 시절에 마음속에 쌓여있던 응어리를 이제 와서 풀려고 괜한 얘기를 한 것 같아 말을 해놓고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집에 와서 봉지에서 옷을 꺼내 보았다. 엄마에게 화낸 게 미안할 만큼 유명 브랜드의 옷들이 가득 들어 있었고 옷 상태도 좋아 보였다. 때마침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에도 옷을 좋아하는 아이는 못 보던 옷들이 집에 있으니 빨리 입어보고 싶어 했다.
아이는 옷을 갈아 입힐 때마다 마치 아동복 모델처럼 포즈를 달리 취하며 옷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다. 아이에게는 이 옷이 물려 입은 옷인지 새 옷인지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아직 어려서 물려 입은 옷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속으로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우리 둘째가 너무 예뻐서 외할머니가 사 주신 옷이라고 포장을 해서 말했다. 오랜만에 새 옷을 입어서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이는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고 싶어 했다. 나도 집으로 오면서 엄마에게 괜한 말을 한 것을 만회해 보고자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둘째가 옷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애교 있는 목소리로 "할머니, 예쁜 옷 사줘서 감사해요. 사랑해요."라고 얘기를 하며 엄마에게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친정엄마도 옷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며 기뻐하셨다. 나는 끝내 엄마에게 아까 그런 말을 해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지 못했다.
41년을 살아오면서 그동안 엄마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남겼을까? 아마 셀 수도 없이 많은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때론 이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냈겠지. 손에 난 상처에 바르는 후시딘과 같이 마음의 상처에도 바를 수 있는 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날은 내가 엄마에게 준 상처를 우리 딸이 나 대신 따뜻한 말로 상처를 ''호호 ''불며 어루만져준 것 같아 딸아이에게 고마웠다. 아이를 기르다 보니 41살 먹은 나보다 5살 먹은 아이가 더 생각이 깊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결혼식장에 입고 갈만한 멋지고 예쁜 새 옷을 몇 벌 사준 적이 있다. 새 옷을 기분 좋게 입혀놓고는 아이가 음식을 먹다가 새 옷에 뭐라도 흘리고 묻힐까 봐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그 후로는 새 옷보다는 물려 입은 옷을 마음 편하게 잘 입혔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아이 둘 다 아토피가 심하다 보니 새 옷보다는 물려받은 옷이 아이들의 피부에 더 좋다고 얘기를 들은 이후로는 막 입힐 수 있는 옷들에 손이 더 많이 갔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친정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이 옷이 새 옷인지 얻어 입은 옷인지조차도 잘 모른다. 괜히 엄마 마음에 남들처럼 새 옷을 자주 사 입히지 못하는 못난 엄마가 된 것 같아 물려 입은 옷을 입힐 때면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미안했다. 이제는 아이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훌훌 벗어던지고 싶다. 그리고 7살 때 옷 때문에 상처 입은 어린 나도 놓아주고 싶다. 새 옷보다는 헌 옷을 자주 입혔던 친정엄마였지만 나를 향한 마음만은 그 어떤 엄마보다도 뜨거웠다. 엄마가 날 위해 희생하고 사랑을 주셨기에 나도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를 내어주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