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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Nov 02. 2021

김장 배달

일 년 중 주부들이 제일 분주한 시기가 성큼 다가왔다. 바로 김장철이다. 이맘때가 되면 엄마 가게의 매대도 싱싱한 배추와 무. 쪽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와 같은 김치 속재료들로 가득하다. 예전에는 배추를 사서 소금에 절여김치를 만들었기에 배추가 많이 팔렸다. 어느새 절임배추라는 아주 획기적인(?) 상품이 개발되면서 김장철에 주부들의 수고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것 같다. 하지만 친정엄마를 포함해서 일부 어머님들은 아직까지도 편리한 절임배추보다는 배추를 사서 직접 소금에 절이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계신다.

엄마 가게


어린 시절. 김장철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오토바이에 배추와 무를 한가득 싣고 이 집 저 집 배달을 다니셨다. 배달을 마치고 가게로 오시면 그새 또 다른 주문이 들어와서 쉴 시간도 없이 바쁘게 배달을 가셨다. 무거운 김장 재료를 들고 4,5층 높이의 계단을 걸어서 배달을 몇 번 다녀오시면 아버지는 금세 파김치가 되셨다. 하지만 어린 나는 모처럼 가게에 생기가 돌고 엄마의 앞치마에 현금이 볼록하게 쌓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그저 좋았다. 김장 장사가 끝날 무렵. 엄마도 김장김치를 담그셨다. 김장을 한 날에는 돼지고기도 함께 푹 삶아서 잘 삶아진 수육 위에 아삭아삭하고 맛있게 매운 김치를 얹어먹었다. 밥도둑이 따로 없을 정도로 꿀맛이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김장철이어서 많이 힘든 줄도 모르고 매해 김장철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자 오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토바이를 타고 김장 재료들을 배달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오빠가 새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이었다. 오토바이 면허가 없는 엄마는 이번에는 가게에 있는 리어카로 배달을 다니셨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연세가 많아진 엄마는 힘에 부쳐서 더 이상 리어카로 배달을 못 하셨다. 가게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까지만 바퀴가 달린 손수레를 끌고 배달을 하셨다.


어느 날. 어떤 아주머님이


"아주머니, 저희 집이 여기서 가까운데 배달 좀 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때마침 내가 가게에 있었고 가게가 조금 바빴기에 내가 배달을 가게 되었다. 야채가 가득 실린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그분의 뒤를 말없이 따라 걸었다. 30분 가까이 걸었는데도 그분의 집이 보이질 않았다.

'분명 집이 가깝다고 하셨는데...' 그분께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참을 뒤따라 걸어갔다. 한참을 더 가서야 그분의 집에 겨우 도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꼭대기층에 살고 계셔서 그분의 집까지 산 물건들을 올려다 드렸다. 너무나 힘들고 다리가 아팠다. 왔던 길을 더듬더듬 기억하며 한참을 걸어서 가게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딸이 오질 않자 엄마도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이 많이 되셨다고 했다. 그리고 괜히 배달을 시켰나 후회되었다고 하셨다. 며칠 후 그분이 또 가게에 오셨다.


"아줌마, 저번에 집이 가깝다고 해서 딸을 배달시켰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딸이 안 와서 걱정했어요. 너무 멀어서 배달 못 해줘요." 

엄마가 딱 잘라서 거절하셨다. 먼 거리를 다시 배달을 안 가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물건을 팔지 못하는 아쉬움도 약간 남았다.


요즘 아침에 엄마 가게의 문을 여는 걸 도와드리고 있다. 엄마 가게의 주 고객층은 50~80세의 중년 어머님들로 계란 두 판도. 배추 두 포기도. 열무 두 단도 들고 가시는데 어려움이 많으시다. 엄마 가게 바로 앞에 농협 하나로마트가 있는데도 엄마 가게에서 물건을 사 가시는 분들이기에 계란 한 판을 사셔도 파 한 단을 사셔도 감사했다. 며칠 전에 아는 할머님이 계란 두 판을 사셔서 댁에 가져다 드렸다. 오랜 단골이시고 엄마가 장사가 잘 안 되는 걸 아시기에 계란을 한 번에 두 판씩이나 사신 것 같았다. 그래서 배달을 해드렸다. 계란을 많이 사셨으니 가져다 드리는 게 당연한데도 빌라 6층에 사시는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다.


며칠 전에 길 건너에 있는 슈퍼에서 고춧가루 배달 주문이 들어왔다. 엄마는 일반 고춧가루와 청양 고춧가루를 저울에 올려 넉넉하게 무게를 담고 봉지의 끝을 야무지게 묶어서 손수레에 실었다.


"정림아, 엄마 길 건너 슈퍼에 고춧가루 배달 다녀와야 하는데 안 바쁘면 가게 좀 잠깐만 봐줄 수 있어?"


엄마가 요즘 다리가 많이 아프셔서 잘 걷지 못하고 어차피 내가 가게에 있는 물건 값도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배달을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길 건너에 다른 집에 배달을 갈 귤 한 상자를 수레에 먼저 싣고 고춧가루를 그 위에 싣고 배달을 갔다.


''과일이라도 사러 건너가야 하는데...''


딸인 내가 배달을 가자 슈퍼 사장님이 약간 멋쩍어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고춧가루를 많이 주문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따뜻한 말씀을 건네주셔서 마음이 모처럼 훈훈해졌다. 오랜만에 고춧가루를 팔아서 십만 원이 넘는 목돈을 수금해서 받아오니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이 돈으로 거래처에 야채값도 내고 공과금도 내는 등 이 돈이 요긴하게 잘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춧가루와 귤 배달 중

수금한 돈을 가져다 드리자 엄마는 미안해하셨다. 나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기며 자주 폐를 끼치는데도 엄마는 내게 작은 부탁을 하실 때마다 늘 미안해하셨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가게일도 돕고 배달도 더 많이 해 드리고 싶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지금은 오전 시간에만 잠깐 가게일을 돕고 있다. 남들처럼 엄마에게 매달 용돈을 두둑이 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일을 하고 있지 않기에 늘 마음 한편이 죄송하고 미안했다. 하지만 엄마 가게를 도와드리면서. 은행 심부름을 하면서. 간단한 배달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엄마에게 효도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동안 엄마에게 진 마음의 빚을 다 갚으려면 아마도 한참을 더 도와드려도 모자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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