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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Jan 31. 2021

''볼펜은 버리셔도 됩니다.''

자가격리 3일 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온 가족의 체온을 재고 큰 아이의 체온을 자가격리 앱에 기록했다. 다행히 정상체온이었다.


 아침식사를 서둘러 준비했다. 아이가 평소에 좋아하는 떡만둣국을  열심히 끓였다.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육수를 우려내어 뜨끈하게 끓여서 냈다. 다행히 아이들은 맛있게 잘 먹었다.


 오전에 위생키트를 전달해주러 어떤 분이 오셨다. 나에게 볼펜 한 자루를 건네셨고 위생키트 수령자 란에 인을 다하고 볼펜을 돌려드렸더니 볼펜은 버리시거나 필요하시면 사용하셔도 된다고 하셨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기분이 들며 씁쓸했다.

 위생키트 속에는 주황색 쓰레기봉투와 덴탈 마스크 5장과 몸에 붙여서 체온을 재는 패치형 체온계. 자가 격리자 안내문과 자가격리 통지서. 살균 스프레이. 손 세정제가 담겨 있었다. 주황색 봉투는 문의해 봤더니 우리 가정에서 발생한 일반쓰레기를 이 봉투에 다 모아두었다가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면 종량제 봉투 속에 이 주황색 봉투를 담아서 버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음식물쓰레기도 자가격리 기간 동안 냉동실에 모아 두었다가 이 주황색 봉투에 담아 자가격리가 해제된 후에 같이 버리라고 쓰여 있었다.


 아이들과 집에만 있고 나가질 못 하니 아이들이 많이 답답해했다. 하지만 외출을 못 하는 것보다도 더 힘든 건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따로 두는 것이었다. 큰 아이가 이제 막 8살이 되어서 어른처럼 혼자서 방에 하루 종일 있을 수도 없고 둘째는 큰 아이와 한 시도 떨어지려고 안 해서 같은 집 안에서의 격리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특히나 밥을 먹을 때 큰 아이는 방에 밥을 따로 가져다주었는데 아이가 입맛이 없는지 ''엄마. 내가 더러워? 왜 나만 따로 먹을 걸 덜어줘?''하면서 밥을 한 숟가락도 안 먹고 식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로서 마음이 아팠다.

어른도 2주간 자가격리가 힘들다고 하던데 갓 8살이 된 아이를 방에 혼자 격리한다는 건 너무 어려웠다.


 온 가족이 밥을 먹을 때를 빼고는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고 귀도 많이 아팠다. 큰 아이는 방에서 밥이나 간식을 혼자 먹었고 나는 둘째 아이와 같이 식탁에서 밥을 먹고 남편은 거실에서 혼자서 먹으려고 애썼지만 매번 쉽지는 않았고 큰 아이가 혹여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봐 많이 걱정이 되었다.


 오늘이 자가격리 3일 차이지만 우리 아이는 지난 1월 15일에 확진자와 마지막으로 접촉을 했기에  자가격리 해제일은  부터 2주 후인 1월 29일. 낮 12시라고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자가격리 해제 전날에 다시 한번 코로나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이 1월 20일이니 앞으로 9일만 지나면 밖에 나갈 수 있을 거라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많이 미안했고 아이들이 잘 버텨주고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겨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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