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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Mar 02. 2021

엄마 경력 있습니다만...

 잃어버린 8년.

첫째 아이가 올해 8살이 되어서 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작년에 둘째 아이를 아이의 학교 근처에 있는 국. 공립 어린이집에 보내 보려고 어린이집에 상담을 갔었다. (둘째 아이도 올해 5살이 되어서 다니고 있었던 가정형 어린이집을 졸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은 지어진 지 3년도 되지 않아서인지 시설도 매우 깨끗했고 국공립어린이집이었고 유기농 친환경 매장인 한살림의 식자재를 사용해 급식이 제공되고 큰 아이가 다닐 학교의 길목에 있어서 우리 둘째도 이 곳에 입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꿈꾸던 조건의 어린이집을 드디어 만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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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내 대기 순번은 23번.

앞으로 신입원아를 7명만 추가로 모집한다는데 내 순번이 23번이라 원장님이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하셨다.


보통 국공립 어린이집은 맞벌이 부부의 아이가 가점이 높다고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게다가 나는 전업주부에다가 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쯤 둘째가 어린이집에 입학을 하니 영유아 자녀가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들어서 그나마 100점이었던 점수도 0점으로 낮아져서 3순위로 밀려나 내 순번은 23번 뒤로 더 밀릴 수 있다고 하셨다. 오. 마. 이. 갓!!!

다들 이래서 임신했을 때부터 괜찮은 어린이집에 미리 대기를 걸어놓아야 한다고 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아쉬웠다. 결국 나와 같은 외벌이 가정의 아이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결혼을 하자마자 큰 아이를 바로 임신하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유산기와 조산기가 있어서 뜻하지 않게 임신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큰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를 3살 터울로 낳다 보니 다시 임신과 출산, 육아가 반복되었다.

친정엄마도 일을 하시고 남편은 영업사원이어서 밤낮없이 바쁘고 지방으로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독박 육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둘째가 어느 정도 크자 다시 취업을 해 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력서를 써 보았다.

하지만 내 이력서는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결혼을 한 2013년 11월에 멈춰있었다. 나름 지난 8년 동안 엄마로서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왠지 사회에서는 인정을 안 해 주는 엄마 경력만 8년째 쌓인 것 같아 한참을 이력서의 빈칸만 바라보았다. 왠지 마음 한편이 씁쓸하고 쓸쓸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식용유나 김 세트라도 손에 쥐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내심 부러웠었다.

'저 사람들은 사회에서 아직 인정받고 쓸모가 있는 사람들인가 보네...'라는 생각이 들며 울컥했던 적도 가끔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사회에서 잊혀진 투명인간 경력 8년 차인데...'


 나는 결혼 전에는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강사였다.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 밤 10시 반은 돼야 퇴근을 하고 남편도 퇴근 후 아무리 집에 빨리 와도 밤 8시 반에서 9시인데 그럼 우리 아이들은 야간까지 돌보는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까? 올해 큰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그 늦은 시간까지 학원으로 뺑뺑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이를 낳고부터 고질병이었던 허리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참고 참다가 재작년에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 봤더니 내 허리디스크가 2개가 터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허리 디스크가 5개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아직 30대 후반인 내가 왜 디스크가 터졌는지 그날은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아이들을 둘 다 자연분만으로 낳았는데 출산할 때 특히나 둘째가 너무 커서 허리를 틀어서 낳아서 디스크가 터졌을까? 아직도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무리를 하고 모유수유를 하면서 자세가 안 좋았으니 터졌으려나... 추측만 할 뿐이다. 이놈의 만성 허리 통증 때문에 다시 예전처럼 학원에서 장시간 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입학할 가능성이 너무 희박한 것 같아 걸어놓은 대기를 결국 취소했다. 결혼한 후 나름대로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하고 또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하고 살림을 하면서 나름 열심히 살았었는데 이러한 엄마로서의 경력은 사회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아이와 나서면서 속으로 외쳤다.

'저도 엄마 경력 있습니다만...'이라고...


*앞으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육아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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