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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소녀 Jun 02. 2021

건강아,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주렴

신생아 황달 입원기


2017년 11월 2일 초겨울.


큰 아이를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과 산부인과로 향했다. 둘째인 건강이(태명)의 출산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유도분만제를 맞고 고단한 출산과정이 시작되었다. 큰 아이를 이미 자연분만으로 낳아본 경험이 있지만 두 번째 출산도 역시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아무리 배에 힘을 줘도 아기는 좀처럼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틀어서 아기를 낳으면 나중에 허리 통증으로 고생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허리를 비틀어 아기를 낳으면서도 많이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나보다는 몇 배나 더 힘들 아기를 생각하며 젖 먹던 힘까지 짜내었다. 아기의 머리가 가까스로 나왔지만 극심하고 기다긴 산통에 너무나 지친 나머지 막판에 쏟아부을 힘이 나에겐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다급함을 느낀 의사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아기의 어깨를 살짝 비틀어서 빼내셨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나에게 얼굴을 잠시 보여주시고는 아기의 어깨뼈에 혹여 무리가 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황급히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출산과정이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만실 침대에 누워 시계를 올려다보니 시곗바늘은 오후 3시를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분만하는 내내 뱃속의 둘째 아이도 걱정이 되었지만 어린이집에 혼자 있는 큰 아이의 걱정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혹여 내가 밤늦게까지 아기를 못 낳아서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혼자 남아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친정엄마가 장사를 하고 계시기에 어린이집 하원 후에 큰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산통도 드디어 끝이 났고 엑스레이 촬영 결과 둘째의 어깨도 다행히 괜찮았다. 친정엄마에게 제일 먼저 이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전화를 걸었다. 먼저 아기를 잘 낳았다고 말씀드리고 오늘 큰 아이는 하원을 잘했는지 여쭤보았다. 엄마도 딸과 아기가 모두 건강해서 이제야 마음을 조금 놓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장사를 하셔서 오늘은 새언니에게 큰 아이 하원을 부탁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늘 데리러 오는 엄마가 아닌 외숙모가 데리러 와서 많이 놀라고 속상했는지 어린이집에서 할머니 가게로 오는 내내 울며 걸어왔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엄~마, 엄~마" 하며 울고 있는 네 살배기 큰 아이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오자 마음이 너무나 아렸다. 남편에게 얼른 엄마 가게로 가서 큰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부탁을 했다.


영양제 링거를 맞으며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힘든 출산과정은 다 끝났지만 출산의 여파는 아직도 내 온몸 구석구석에 남아있었다. 회복실 침대에 누워서 병원의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오려 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힘들게 낳았겠지?... 난 3.52kg의 아기도 이렇게 낳기가 힘들었는데... 우리 엄마는 4.7kg의 오빠를 어떻게 자연분만으로 낳았을까?... 5kg에 가까운 오빠를 낳은 엄마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큰 아이 때도 지금처럼 온몸이 힘들었었는데 아이가 너무 예쁘다 보니 산통을 금세 또 잊고 이렇게 둘째를 낳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친정엄마와 큰 아이의 얼굴이 너무나 보고 싶었고 갓 태어난 우리 둘째 건강이도 빨리 다시 만나고 싶었다.


큰 아이를 출산했을 때에는 퇴원 후 바로 조리원에 들어가서 몸조리를 했다. 하지만 둘째를 낳은 후에는 큰 아이가 자꾸 눈에 밟혀 조리원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큰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고 또 200만 원이 훌쩍 넘는 조리원 비용이 외벌이인 우리 가정에 경제적으로 많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조리원에 가는 대신 집으로 오는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한 달간 받기로 결정했다. 큰 아이도 같이 있을 수 있고 산후도우미 이모님들도 신생아 케어에 베테랑이시기 때문에 믿음이 갔다.


2박 3일간의 짧은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을 했다. 퇴원을 할 때 간호사 선생님이 한 가지 당부를 하셨다. 산모가 혈액형이 O형이고 아기가 B형이기 때문에 다음 주 목요일에 꼭 병원에 내원해서 진료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큰 아이 때에도 황달을 이미 겪어보았기 때문에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에 퇴원을 했기 때문에 산후도우미 이모님 없이 남편과 내가 함께 아기를 돌보았다. 둘째를 목욕시키고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큰 아이 때에는 조리원에서 신생아를 하루 종일 돌봐주셨기 때문에 이렇게나 어린 핏덩어리를 돌본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서툰 엄마지만 최선을 다해서 아기를 돌보았다. 드디어 월요일이 되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산후 도우미 이모님이 집으로 오셨다. 이 도우미 이모님이 워낙 실력이 좋으셔서 어렵게 모셨다. 이모님이 다가오는 목요일, 금요일에는 이미 김장 약속이 있셔서 지방에 내려가셔야 했기에 이틀간은 다른 도우미 이모님이 오시기로 했다.  

 

아이를 낳은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새 도우미 이모님이 집으로 오셨다. 출산을 한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지 일주일 후에 꼭 병원으로 와서 진료를 보라고 하셨지만 출산한 병원이 차로도 조금 먼 거리였고 새로 오신 도우미 이모님과 택시를 타고 카시트도 없이 아기와 셋이서 병원으로 가기가 위험할 것 같아서 조금 망설여졌다. 그리고 신생아 황달 때문에 축 처져있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얼굴과 눈이 많이 노랬지만 모유를 빠는 힘도 세고 축 처지지 않아서 황달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틀 뒤 남편이 쉬는 토요일에 병원 진료를 보러 가기로 했다. 토요일이 되어서 출산한 병원에 있는 소아과에 진료를 보러 갔다.


아기 황달수치가 24.7이에요. 지금은 뇌가 열려있어서 빌리루빈*이 뇌까지 노랗게 물들이는 시기인데 왜 이제야 병원에 오셨어요?...
 빨리 광선치료를 받아야 해요.”


(빌리루빈: 혈액 안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안에 있는 헤모글로빈은 수명이 다해 분해되면 빌리루빈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지게 된다. 황달 수치가 높으면 빌리루빈이 두뇌로 넘어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손상이 생기는 두뇌 부위에 따라 뇌성마비, 경련, 지능장애, 청력손실 등이 생길 수 있다. )


아기가 태명처럼 건강하고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듣자 나는 한없이 눈물만 흘렀다. 주변에 있는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을 할 자리가 있는지 병원 측에서 알아봐 주신다고 했다. 힘없이 진료실 밖으로 나왔을 때 눈앞에 수간호사 선생님이 보였다. 아기를 출산하고 모유수유를 담당해주셨던 간호사 선생님이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생님께 다가갔다.


선생님, 저희 건강이가 황달수치가 너무 높아서 입원을 해야 한데요...
오늘이 주말이어서 자리가 많이 없을 거라고 하던데... 저 좀 도와주세요. 선생님...”


수간호사 선생님도 건강하게 퇴원을 한 건강이가 황달이 이렇게 심해져서 매우 놀라셨다. 울고 있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근처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꼭 입원할 자리를 알아봐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다행히 근처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할 자리가 있어서 우리 가족은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출산한 병원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입원 수속을 따로 밟지 않고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아기를 입원시킬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자마자 아기가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기고 기저귀만 채운 채 눈을 가리는 안대만 한채 광선치료를 시작하였다. 우리 아기는 황달 수치가 24.7로 너무나 높아서 광선을 5개 정도 쐬야 한다고 하셨다. 주말이어서 담당 교수님이 안 계셔서 전문의 선생님께 설명을 들었다.


만약에 이미 빌리루빈이 아기의 뇌까지 노랗게 물들였으면 아기는 뇌성마비나 청력손실, 언어 장애를 앓을 수 있어요. 그리고 광선치료를 했는데도 큰 차도가 없으면 아기 몸속의 전체 피를 다른 피로 교환하는 교환 수혈까지도 고려해봐야 해요.

선생님은 의사로서 최악의 상황까지 설명을 하셔야 했겠지만 엄마인 나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고 이 모든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손이 덜덜 떨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오전과 저녁 하루에 30분씩 두 차례만 면회가 가능했다. 나는 몸조리도 잊은 채 하루에 두 차례 병원에 방문해서 아기를 보았다. 아기가 없는 집에서조차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자격조차 없는 엄마인 것 같아 한없이 눈물만 흘렀다. 내가 아기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잠도 잘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마다 모유를 유축해서 냉동실에 얼려서 면회를 하러 갈 때마다 가지고 가서 간호사 선생님께 건넸다.

면회시간이 되어서 아기의 얼굴을 보러 신생아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아기는 눈을 가리는 안대만 하고 있었고 기저귀만을 걸친 채 온몸으로 온갖 광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내 마음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서인지 추운 겨울에 벌거벗고 기저귀만 겨우 하고 있는 아이가 너무나 추워 보이고 안쓰러웠다.  


어느 날은 아이가 기다란 호스를 입에 문 채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황달 때문에 아이의 뇌 초음파를 찍어야 해서 아이를 재우기 위해 수면제를 먹이고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는 그게 수면제라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받아먹고 있었다. '내가 아기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아기는 하루에 몇 차례 황달수치 검사를 했다. '광선치료를 받고 있으니 황달수치가 떨어졌을까? 안 떨어졌을까?' 너무나 걱정이 되어서 저녁에 면회시간이 끝난 후에 집에 와서도 아기를 생각하며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다.


담당 교수님을 처음 만나 뵌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교수님은 산모가 혈액형이 O형이고 아기가 B형이어서 ABO 식 황달(부연 설명하기) 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O형이고 아기는 B형이기 때문이다.

(ABO 식 황달- 엄마가 O형이고 아기가 A형이나 B형일 때 나타난다. O형 산모에게는 A형 항체와 B형 항체가 정상적으로 있는데 그 항체가 신생아에게 전달되면 A혈액형과 B 혈액형을 가진 신생아의 적혈구가 용혈 되어 파괴되어 빈혈과 황달을 초래한다. )


그 어떤 동물도 본인의 젖을 자식에게 먹였다고 해서 큰 해를 끼치는 경우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병원에 그때라도 오셨으니 괜찮을 거예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고요. 산모님."  

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한없이 흘리는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셨다.

10개월 동안 뱃속에 잘 품고 있다가 멀쩡하게 잘 낳은 아기를 나의 부지(不知)로 이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옥죄어왔다. 친정엄마는 추운 겨울에 몸을 푼 딸을 걱정하셔서 병원에 안 갈 때에는 집에서 좀 누워서 쉬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집으로 돌아와도 주인 없이 놓여있는 아기의 이불과 장난감들을 보니 정작 물건의 주인인 아기가 집에 없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와서 몸과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온갖 걱정거리와 잡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아기가 없어도 마치 모유수유를 하듯이 정해진 시간마다 유축을 했다. 그렇게 모아진 냉동된 모유를 챙겨서 아기를 면회를 가는 방법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매일매일 하루에 두 번씩 신생아 중환자실을 방문해 아기는 비록 짧은 시간밖에 못 보지만 내가 짠 모유를 아기가 먹으며 무럭무럭 잘 크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건강이

11월 15일. 입원 5일째 되던 날.


아이의 최종 병명은 원인 불명의 황달이었다.

광선치료 덕분에 아이의 황달수치가 안정권 밑으로 떨어져서 드디어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24.7이라는 황달 수치가 너무 높았기에 퇴원 후에도 아이가 잘 못 듣거나 언어 발달이 느리면 병원으로 와서 청력검사를 받아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의료진분들 덕분에 아이가 잘 회복되어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둘째가 집으로 돌아오자 모든 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둘째는 태어난 지 겨우 1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우리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둘째가 돌아오자 드디어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면서 온전한 우리 가족의 그림이 완성되었고 온 집안에 온기가 가득했다. 아기가 집으로 돌아오자 나도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먼 거리를 차를 타고 오느라 많이 피곤했는지 둘째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는 둘째에게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건강아, 너는 앞으로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제발 건강하게만 무럭무럭 잘 자라주렴...  
어느덧 5살이 된 건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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