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67년 전 사별한 완벽한 첫사랑과, 65년 동안 동고동락한 사랑을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이 영화의 결말은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난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사후세계로 가기 전 터미널을 배경으로 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세계관이 특이하면, 색다른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니까.
결과적으로는 식상했다. 예상만큼 좋았고, 예상만큼 나빴다. 하지만 '안 봐도 아쉽지 않은 영화'는 아니었다. 이유는 영화 속 조앤의 선택과 같다. 조앤은 왜 래리를 선택했을까. 그녀가 직접 내뱉지 않은 그 이유를 찾아보자.
스쳐 지나가는 작은 장면이 있다. 조앤의 패닉을 진정시키려 래리는 어이없는 제안을 하고, 조앤은 곧 나아진다. 으쓱해진 래리는 무의식 중에 조앤이 아주 싫어할 행동을 한다. 체감상 1분이 채 되지 않는 가벼운 개그 신이지만, 난 '자~ 감동드립니다~'라는 장면보다 이 장면에 더 감탄했다. 영화 전체가 여기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으로 경이로움을 느낀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다시 봐도 장점이 단점을 한참 앞서는 그런 영화. 평생 잊을 수 없는 전율. 루크는 그런 기억에 가깝다. 반면 이 영화는 어떠한가. 정-말 래리 같은 영화다. 마음을 간지럽히며 날다가도, 얌전하게 착지한다. 하지만 난 이 영화에 감긴다. 조앤이 래리와 함께해 온 시간처럼.
이유는 과거의 경험이다. 내 기준 만점의 영화는 1% 정도의 비율이다. 압도적인 감정이든, 형언할 수 없는 울림이든 큰 자극을 주는 작품은 드물다. 모든 영화가 이럴 수 없다는 사실은 실망이었지만, 대신 카메라의 뒤편이 보이기 시작한 건 기쁨이었다. 모두가 잘하려 하지만, 모두가 완벽할 수는 없다. 지독하게 형편없는 영화에도 관객을 위해 애쓴 흔적은 남아 있다. 영화는 그대로지만, 내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조앤이 래리와 65년을 함께한 이유는 래리를 미친 듯이 사랑해서가 아니다. 래리가 지속적으로 자신을 위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그리고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완벽한 루크를 잃는 건 아깝다. 미련이 묻은 질문을 하게 된다.
만약 조앤에게 래리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조앤은 루크와 영원히 행복하지 않았을까?
영화가 제안하는 세계는 사후세계의 터미널이다. 목적지는 소위 '천국'. 무교인 내 머리는 '천국? 모든 고통이 없는 세상이지'라고 자동 출력했다.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데, 제목인 '영원'을 강조했다. 영원이라. 생각해 보지 않았다. 긍정성만 남아있는 세상에서 영원히 지낸다면, 정말 영원히 행복할까?
처음부터 크게 생각하면 힘드니, 극단적으로 단순화해 보자.
그러니까 천국이란 영겁의 시간을 치킨만 먹으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긍정성의 영속이라는 것이다. 와... 나는 질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
조물주든 신이든 빌고 빌어 양념치킨, 간장치킨, 마라치킨... 아무튼 세상 모든 치킨을 허락받자. 과연 나라는 사람이 모든 치킨을 박애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다양화된 긍정성이라도, 상대성이 생기는 순간 불만족도 생겨버린다.
게다가 모든 부정성이 배제된다면 극복의 기쁨, 성장의 희열, 회복의 온기 따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국은 완벽한 곳 아니었나!?
루크가 '난 완벽하지 않아!'라고 외치는 장면은 결말을 향한 미끄럼틀처럼 보이지만 난 이 장면이 천국의 역설을 해결하는 근거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이 대사는 '완벽함은 없다'라는 선언이 아니라 완벽함이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상적인 사랑은 없다고 하는 게 아니라, 참을만한 고통을 함께 해결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인 사랑이라 말하는 것이다.
고통이 곧 변화와 성장이고, 결함을 포함하는 것이 완벽함이다.
산뜻한, 맞는 말이다.
조앤이 래리를 선택하듯, 나도 이 영화를 좋다고 얘기하겠다.
아마 앞으로도 난 99%의 영화에, 이렇게 흔들리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