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의외로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라온 케이스 중 하나였다. 다만, 생각보다 나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란 기억이 없다는 것을 보면 사랑의 방식이 잘못되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 특히 엄마는 어려서부터 나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식"을 본인보다 끔찍이 아끼시는 분이셨다. 그렇기에 본인에게 쏟아야 할 시간과 에너지까지도 모두 "자식"을 향해 쏟았고 당연스럽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기를 바라는 보상심리도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분이셨다.
그런 과도한 보호와 사랑 아래서 나는 과연 올바른 아이로 성장하였을까? 아니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에 나는 "맞다"는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강력하게 "아니다"라는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나는 그저 사회적으로, 부모님의 눈앞에서는 착한 아이인 척 살았지만, 나의 내면에서는 내 안의 욕구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소심하면서도 반항적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아낌없이 주어지는 사랑과 관심이 때로는 큰 부담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상황을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가려했기 때문이다. '너는 이렇게 행동해야 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착취하는 언행을 일삼던 부모님의 사랑은 나에게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해'라는 방식으로 나를 자신의 뜻대로 이용하려 했다. 이런 불쾌한 사랑에 착취당한 삶이 노예의 삶과 어찌 다를 수 있으랴. 물론 진정한 의미의 사랑과 헌신, 희생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정신임에 틀림없지만, 원치 않는 사랑으로 인하여 자유를 억압받고 살아야 하는 상대방의 인생을 생각해본다면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재고해볼 만한 소지가 있는 영역인 것 같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나는 부모로부터의 과도한 사랑으로 인하여 자유를 뺏긴 삶을 살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항상 부모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그렇게 나의 인생은 순조롭게 부모의 욕구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 만들어져 갔다. 나는 마치 그들의 꼭두각시 마냥 좋은 딸의 역할을 해오며 그들이 제공해주는 안전한 기지 속에서 무탈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독립할 수 있을만한 충분한 능력과 경제력이 갖춰진 지금, 드디어 내 안에 억눌린 감정과 욕구들이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은 그동안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던 나와 거의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소극적이고 소심한 줄만 알았던 나는 의외로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며 꽤나 냉소적인 사람이었고, 사람을 가리고 기피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의외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잘 판단할 줄 알고 영리한 구석도 있으며 무엇보다 자유를 갈구하고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내가 정신과를 다닐 정도로 심적으로 약한 시기를 겪기도 했다는 사실을 비추어 보면, 얼마나 억눌린 삶을 살아왔는지가 지레짐작이 가능하다. 그때 당시에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잃은 채 하루하루를 정말 버티듯이 살아왔었다. 자유를 억압받으며 누군가를 위한 인생을 살아내는 현실이 감당하기 버거웠다.
이제는 이렇게 객관적으로 나의 인생을 성찰할 수 있게 된 것을 정말로 기쁘게 생각한다. 또한, 그들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독립된 생활을 영위해내고 있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놀라우면서도 기특하고 대견하다. 내 안에는 본래 역경 속에서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랑이 조건부 사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나 자체로 온전하기에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없이도, 아니 오히려 없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 생각이 없다. 오로지 나로 존재하며, 나인채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남들이 아닌 나로 태어난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