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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친으로부터의 연락.

by omoiyaru

어제는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은 날이었다. 그 상대는 1년 전에 헤어졌던 '구남친'.

너무 웃기게도 헤어진 연인과 헤어진 이유에 대해 시간이 흐른 후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실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이 한편에 있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이별로 인하여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많았지만 하지를 못했고, 듣고 싶은 말도 있었지만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이야말로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어 그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딱히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편안한 상태에서의 편안한 대화. 치열하게 내가 나의 삶을 살아온 만큼 그 사람 또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았다.


약 3시간가량의 통화를 하며, 몰랐던 부분과 오해했던 부분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 그는 인정을 하고 사과를 했고, 나는 사과를 받아들였다. 나 또한 그 당시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행동들을 사과했고, 그는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용서했고, 그때의 기억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진실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온전히 다 믿는 순수함을 장착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가 아닌 누구라도 타인이 하는 말속에는 진실이 아닌 이야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의도가 불순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성숙해졌고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의 말 하나하나에 감정이 동요되던 지난날의 나는 이제 없어졌다. 나는 그와 동등한 관계성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대화는 편하고 즐거웠다. 그 또한 그렇게 느낀 것 같다.


나는 진정으로 그의 성공을 바란다. 또한 그만큼 나의 성공을 바란다. 성공한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인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지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서로의 속사정을 아는 사이인 우리는 적도 아닌 동지도 아닌 관계성으로 어떤 의미로든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이번 연락을 통해 과거의 나, 과거의 연인을 마주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나를 칭찬하고 싶어졌다. 다소 수치스럽고 창피할 수 있는 과거 또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때의 나와 한때를 함께 보내준 이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 이는 어쩌면 1년 전 내가 가장 되고 싶었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내가 원하는 모습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고, 어느새 그런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어제의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았다. 나의 소중한 한 때를 함께 해주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감정을 일깨워준 그에게 뒤늦게나마 이렇게 연락을 주어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할 수 있어 참 기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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