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기준을 갖고 사는 삶 1탄

by omoiyaru

나는 그동안 무언가에 미쳐서 무리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안 좋게 생각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기심이 많은 나는 이것저것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들이 참 많았고, 시도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당연히 다양한 실패를 겪는 일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기에 '무리한다'는 단어의 이미지는 나에게 좋은 쪽으로 형성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실패를 겪게 된 순간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들은 '네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였다.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도 처음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과유불급'이었다. 단순히 내가 남들보다 과도한 욕심을 부려 실패하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를 덮치는 우울한 기분에 빠져 나를 놓고 망가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과유불급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몇 번이고 내 머리를 스쳐가는 동안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내가 정말 욕심이 많았나?'

'그저 잘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저 잘 해내고 싶었던 것인데'

'욕심을 부린 것은 나쁜 것일까?'

'왜 나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게 된 걸까?'


수많은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생되어 가던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하나의 답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나는 무엇이든 처음 해 보는 일에 대해 나만의 기준점을 몰랐기 때문에 여태껏 그렇게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욕심을 내고 무리를 했던 것이었구나!'


사람은 무엇이든 처음 하는 것에 있어서는 정도를 알 수 없다. 나만의 기준점을 정의할 수 없다. 남들이 정한 기준이나 평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들이 정한 것이기에 진정으로 나는 어디까지 가능한 사람이고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지를 알려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끝까지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되면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여기까지가 내 한계구나'하는 자기 판단이 서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준점이 생기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정한 기준점 이상의 무리를 하지 않는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제와 되돌아보니 그간 나는 참 많은 '무리'를 하며 살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있어서 최선의 결과를 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힘이 드는 상황 속에서도 억지로 힘을 내며 살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나는 내 모습을 보며 무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말들도 잘 와닿지 않았다.


이런 깨달음을 준 것은 다름 아닌 나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를 곁에 두면서부터이다. 나는 내가 친구들에게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을 어느 순간 그 친구에게 하고 있었다. "너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여. 좀 쉬는 게 어때?"

친구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피곤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며,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여유로움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기에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어김없이 나와 같은 대답을 해왔다. "나 하나도 안 피곤해!"


그 친구는 최근에 자신에게 생긴 새로운 일에 직면하며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바쁜 와중에도 바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정신력으로 버티며 살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옛 모습이었다.


나는 과거에 무리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며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억지로 힘을 내며 살아가는 나의 에너지와 진심과는 달리 나를 어려워하고 멀리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상하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참 많았다. 왜 내 진심은 통하지 않는지 억울하고 답답하기도 했었다. 거기에 더해 나를 배척하는 상대들이야말로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같지 않다며 답답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발목 골절 수술을 받게 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