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인생의 어느 정도 정도(선)를 알게 되기도 하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자체가 인생의 진리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나자 이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 나를 대했던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 그리고 나를 어려워했던 이유들까지 모든 것들이 결국은 이 하나의 진리를 관통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는 나만의 기준을 구체화시켜 나가며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것들로 나만의 인생을 채워 나가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또한, 내 안에서 온전하게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사람도 사상도 이념도 나를 방해할 수 없는 진정한 자유, 해방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며 무리를 해왔던 것도, 답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며 답답함에 소리쳐 울었던 것도, 결국은 모두 다 나만의 기준점을 찾기 위한 발악들이었다. 그 기준을 그리고 밖에서 찾아 헤매었었다. 이게 좋은 선택일지 혹은 이게 옳은 선택일지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에 대해서 남들의 기준에 맞는 답을 찾아 헤맸고 나 스스로 나의 인생의 지휘봉을 남들에게 쥐어주며 살았었다. 그런 선택이 쌓일수록 점점 더 피폐해지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우울증을 앓아 온 나는 나의 내면 속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우울감'에 대한 수많은 책과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누구보다 간절히 이 우울감에서 떨쳐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과 영상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답은 '누구나 타고난 기질이 있다'는 말이었다. 결국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타고났기에 나는 우울감을 더 쉽게 느끼는 것이다라는 것이 내가 나와 타협한 우울감의 이유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남들의 손에 의해 쥐락펴락되는 인생을 살며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는 느끼지 못한 채 영혼이 죽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량한 바다 안에서 스스로 목표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배가 아닌 남들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배와도 같은 마음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계속해서 아팠던 것이다.
나만의 기준을 만든다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과 같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는 일을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반대로 수많은 좋아하지 않는 것을 겪어내야만 하는 것처럼, 진짜 나만의 기준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기준점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면 '나'라는 사람이 점차 입체화되기 시작한다.
기준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뀐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바라보지 않고 나는 00한 사람, 00을 좋아하는 사람 등의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내가 나 자신, 나만의 기준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자기 자신을 보호할 힘을 갖게 되고 주위에 흔들리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것을 시기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음도 편안해질 수밖에 없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말처럼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주변을 잘 아는 것만큼이나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Choice(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의 인생길에 '나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 = 곧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선택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행복함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무언가 불만인 일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마음이 편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면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나에게 좋을 선택을 하자. 그 이후에는 그 판단을 믿고 스스로 한 선택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