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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May 18. 2023

고양이는 영물임이 틀림없다.

나의 세계관을 지키며 살아온 지난 30여 년의 세월.


부모님도 바꾸지 못했던 나의 철학과 신념은 고양이를 만나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나는 부모님과 가족을 표면적으로 '사랑'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하진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바라보았을 때 나에게는 우리 가족이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나는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부모라는 이유로 그들이 어린 나를 어떤 방식으로든 케어하여 성장시켰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듯이 나도 그들의 가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이유로 그들을 애써 사랑하려 이해하려 노력했다.


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자 내가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위하여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책을 보았다. 그곳에서 글로 또는 영상으로 보며 희미하게 느껴지는'사랑'의 정체는 조금은 알 것도 같으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애매모호한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경험으로 배웠던 진정성 있는 '사랑의 의미'를 비로소 나는 알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최근 나에게 사랑하는 존재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의 고양이도 아닌 친구의 고양이이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던 나였지만, 이제는 주인만큼이나 자주 보러 다니며 챙기게 되면서부터 나의 우주는 변했다. (이제는 고양이가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어졌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우주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우주의 변화라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머물던 차원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어느 정도 '사랑한다'는 말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안 보이면 궁금하고 봐도 봐도 보고 싶은 것. 모든 행동이 귀하고 소중한 것. 존재 자체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삶의 이유가 되는 것. 지켜주고 보호하고 싶은 것. 


이렇게 사랑의 정의를 표현할 수 있게 되자, 부모님의 말과 행동들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의 투박하고 다소 무례한 사랑의 표현법들이 나에게는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마음들은 전부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사랑하기에 잔소리를 하고 과도한 걱정을 하고 할 일을 대신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었던 것이다.


나 또한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그저 잔소리나 해대는 사람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의 사랑의 표현법이 고양이에게는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서운하기도 하다. 마치 나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만, 그 또한 친절과 배려를 전제로 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조금씩 더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어 사랑을 원 없이 표현하고 받아들여지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책망하지는 말아야 한다. 존재만으로 귀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을 할 줄 알게 되다니, 고양이를 만나 오히려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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