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를 구조하고 어느새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그래서 힘든 줄도 모르고 밤낮없이 뛰어다녔는데 그렇게 누적된 피로가 어느 정도 안정기를 찾은 이제야 드러나고 있다. 고양이를 데려온 이후에는 '늦잠'이라는 걸 자본 적이 없다 보니 자도 자도 피곤하다.
몸이 망가지면 안 되기에 운동도 미루지 않고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피로감이 더 가시질 않는 것 같다.
아픈 고양이라서 처음에는 모든 부분에서 아기 고양이를 우선적으로 챙기려 했다.
모든 응석과 칭얼거림도 받아주면서 새벽에 깨우면 일어나서 놀아주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 것들을 희생하며 지냈었다. 아기 고양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에는 한 달 이내에 입양을 시킬 생각이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올인하듯 생활한 것 같다.
하지만, 피부병으로 인해 치료기간이 늘어가고 있고 무료분양 글을 올리고는 있지만, 나 또한 지금처럼 찝찝한 상황에서 아픈 아이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공존, 공생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느끼고 있다.
아기 고양이를 위한 배려는 기본적으로 하지만, 모든 것을 맞춰주고 희생하기보다는 나를 위한 공간과 시간도 잘 구분하면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할 것 같다.
물론 기본적으로 아직 어린 고양이이기 때문에 나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지만, 단지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잠을 자는 순간만큼은
체력회복을 위해서라도 강력하게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어제도 고양이와 같이 잠을 청하면서 사진을 마구 찍었다.
요 며칠 정신이 없어서 사진을 찍을 틈도 없이 시간이 흘러갔는데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기록이라는 것으로 남겨둘 수는 있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때를 기억할 수 있는 자료들도 많이 만들어 두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사진도 사진이지만 영상촬영을 많이 해두고 있다.
나와 함께 한 지는 한 달밖에 안 됐지만 벌써 사람 손크기 이상은 자란 고양이를 보면, 첫 구조 때의 모습과 크기도 벌써 가물가물하다.
사실 아기 고양이를 갑자기 키우게 되었을 때에는 내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가 삭제되고 내 인생이 혹시라도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아이를 케어하여 입양을 보내려고 했었지만, 세상일은 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내 생각보다 더 많은 피부염을 앓고 이는 아이는 치료가 오래 걸리고 있고, 입양을 보내기 좋지 않은 상태이기에 당연히 분양시장에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입양이 여의치 않게 되자 지금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고민하는 일들 보다는 더 설레고 즐거운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기로 했다.
한 달 사이에 몰라보게 튼실해진 허벅지와 통실해진 배를 보면 내가 키워낸 생명체의 성장력이 참으로 신비하다. 사실 나는 내가 한 것 이상으로 아기 고양이 스스로도 잘 커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잘해주더라도 고양이가 그런 내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여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이런 관계는 또 없었을 것이다. 물도 잘 먹고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노는 것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니까 말이다. 하나의 생명체가 나로 인하여 이렇게 잘 커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뒹굴뒹굴하는 아이와 함께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나도 너무 피곤해서 TV를 보다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는데,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꿀 같은 잠을 잤다.
오랜만에 온전히 잠에 취해 늦잠을 잤다. 고양이도 이리저리 자리를 잡아가면서 내 곁에서 잠을 청했다.
나의 피로는 아직 전부 가신 상태가 아니다. 오늘 하루도 어제와 큰 차이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오늘을 맞이하고 살아간다.
요즘 철학이나 심리와 관련된 책을 읽는 것과 동시에 동요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스님 영상을 꾸준히 보고 있다. 예전에는 마음을 위로하고 수련하는 영상은 내 인생에서 힘든 순간에만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냥 일상처럼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과 같이 마음수련에도 끝이란 것은 없다고 느끼고, 수련을 위한 나의 내공 또한 아직은 부족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공부이든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반복이 필요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책도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그것처럼 연약한 마음도 단단한 마음으로 바뀌기 위해서, 단단한 마음근육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수련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기 전 까지는 배운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몸에 익지 않다 보니 자꾸 과거의 습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스님처럼 폭넓은 사고를 하며, 다양한 시선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하며 살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