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과 '욕망'
최근에 나는 처음으로 내차를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것이 '창피하다,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내가 굉장히 오랜만에 느꼈던 '수치스러움'이었다. 단순히 한 가지 사건만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확실한 것은 좋은 차를 타는 지인과 만나며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내 안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적인 것들로 판단되는 세상을, 현실을 직면하게 된 것만 같다. 처음에는 분명 부럽다는 감정에서 시작되었을 감정이 어느 순간에는 극도의 열등감으로 변해 있었다.
좋은 차를 타는 사람과 함께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여러 상황 속에서 대접받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운전을 하면서도 자동차 경적소리를 거의 듣지 않게 되고 식당에 가도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되고 사람들의 시선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그렇게 인생이 선순환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니 나도 미소를 띠고 친절히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주위에 좋은 기운이 돌고 돌기에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현저히 적어지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감정 속에서 좋은 것만 바라보며 인생을 살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본인이 능력이 된다면 무리를 하지 않는 선에서는 어느 정도 고가의 차량을 사는 것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좋은 투자라는 점에 강하게 동의한다.
그렇지만 현시점의 나에게 고가의 차량보다 우선 시 되어야 했던 것은 '자존감'이었다. 사실 어떤 차를 타던 어떤 곳에 살던 스스로 당당하다면 내가 가진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좋은 차를 타는 지인을 보며 내가 경차를 타는 것에 대하여 창피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사건을 두고 나의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 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사건의 발생과정을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정리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나는 내차(=경차)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차를 타며 좀 더 좋은 차로 바꾸라고 훈계하는 사람 또는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운전을 하면서도 무례하게 대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뭐라고 하던 원래 내가 작은 차를 좋아하기도 하고, 차가 고장 나지도 않았으니 굳이 바꾸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좋은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며 실제로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실제로 체감을 하고
난 뒤 자동차의 브랜드 효과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된 느낌)
그렇게 차를 바꾸겠다 마음을 먹게 되고 좋은 차를 알아보다 보니 점점 더 좋은 차를 원하게 되는 내 안의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화려하고 멋진 차를 발견하게 되었지만 예산보다 2배나 되는 차량 가격표를 보고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내가 꼭 무리를 해서까지 차를 바꿔야 하는 건가? 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반드시 차를 사야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렇게 사건을 정리하고 난 뒤, 나는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보았다.
Q. 경차를 타는 것이 나쁜 것인가?
: 아니다. 자신의 경제적 수준 또는 필요에 의해 차량을 선택하는 것이지, 차 자체에 좋고 나쁨이 어디 있겠는가.
(안정성에 관한 부분은 별개로 두고)
Q. 경차를 타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타당한 것인가?
: 외적인 요소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평가에 큰 가치를 둘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다.
Q. 경차를 탄다고 말하는 것이 창피한 것인가?
: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느낄 필요가 없는 일에 괜히 스스로 창피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나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하다 보니, 그동안 나는 외제차에 현혹되어 '나라는 사람'보다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내차를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내 안의 낮은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나의 외적요소를 더 값비싸고 좋아 보이는 것으로 바꾸는 행위로 타인들로부터 보다 대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차를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니 내가 그동안 왜 내차에 대하여 창피한 느낌을 받았고 새 차에 대해 욕심을 가졌는 지도 이해가 되었다. 욕망을 갖고 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조절 가능한 욕망은 우리를 더 성장시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더 큰 욕망에 빠져 감당하지 못할 무리한 선택을 할 경우 후회를 하게 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내 욕망을 솔직하게 마주한 뒤 그걸 인정했고, 내 욕망에게 조금만 나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내 마음이 어떤 것을 바라는지 알았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무리해서 그 욕망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을 어느 정도 적정선에서 무리 없이 이루어 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렇게 내 안의 욕망을 마주하고 가라앉히고 나니 '지금 당장 차를 바꿔야겠어!'라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지금 타는 차가 고장 나지 않는 한 나는 당분간 계속해서 내차를 타고 다닐 예정이다. 그리고 내 욕망이 바라는 모습대로 추후에는 정말 내가 원하는 차를 나에게 선물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