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효과

진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by omoiyaru

우리는 브랜드 제품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경우 내가 지불한 가격에 대하여 최소한의 마지노선은 지켜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점으로 비유를 한다면,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음식을 주문할 경우 우리는 지불한 가격에 대해 '최소한의 맛'을 보장받을 수 있다. 반면, 새로 생긴 음식점을 도전하게 될 경우 우리는 지불한 금액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RISK를 감수해야만 한다. 가격에 비해 음식 맛이 정말 형편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실패를 줄이고 싶을 때 대게 알던 곳을 선호하게 된다.


최근 나는 이런 브랜드 선호 현상이 우리가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거나 소개할 때 이런 브랜드 효과를 알게 모르게 따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누가 봐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친구에게 소개해 주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 본인이 생각하는 '괜찮다고 생각되는'의 기준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을 테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기준은 '브랜드 가치'가 높은 사람이었다. 직장, 직업, 외모, 재산 등 남들보다 뛰어난 요소가 많은 사람을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하고 소개했고 그런 사람들만 소개받아왔었다.


이는 RISK가 따르는 새로운 매장보다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선호하는 심리와 같이 여태까지의 만남에서 나는 내가 정한 기준, 이 나이에 이 정도의 스펙이 갖춰진 사람이라면 '괜찮다'에 부합하는 사람들만 취사선택하여 만났왔었다. 내가 이런 식의 취서선택을 한 이유 중 하나는 '안전한 사람'을 만나고자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RISK를 줄이려는 선택으로 인하여 나는 아직까지 진짜 내 짝을 찾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을 만나며 더 중요시했어야 하는 것은 외적으로 '괜찮은 조건'에 부합하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그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 지 등 그 사람 자체를 알아보는 일이었다.


여태까지의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을 '거르며' 만나왔고, 그 거른 관계들 속에서도 '진심'을 다해 상대방 그 자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 사람 자체를 보고 만난 것이 아니기에 제대로 존중하지 못했고 배려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여러 면에서 내가 기준으로 삼는 '괜찮은 사람'의 조건에 부합해야만 나는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갖고 대했다. 되돌아보니 나는 한 사람의 껍데기만을 보고 만났던 것 같다. 모두 진정한 만남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도 진정한 내 짝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 원인은 내 안에 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수많은 소개팅과 만남 속에서 상대방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보이는 것들로만 판단했던 과거의 창피한 내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새로운 만남의 과정에서 필요로 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불필요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리고 내가 보이게도 '(외적으로) 괜찮아 보이는'사람 하고만 관계를 이어 나가려 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는 굉장히 모호했구나 싶다. 이는 사람을 사귀는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나는 사람을 보는 기준이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괜찮은 사람'이 포커스가 아닌 '좋은 사람', '나에게 잘 맞는 사람',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 이 내 곁에 남길 사람의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내 주변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 채우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다니다 보니, 쓸데없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힘들게 하던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고 나는 내 삶 속에서 평화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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