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어제, 2년 전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39세 대표님의 과로사 소식을 들었다.
충격적이었지만, 이상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대표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창업자들을 만났다.
우울증은 기본, 공황장애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다.
나 역시 가슴이 조여오는 순간들을 여러번 마주했다.
대표라는 자리는, 내가 봐왔던 어떤 직업보다 정신적인 소모가 큰 자리다.
늘 판단해야 하고, 결정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면서도 늘 괜찮은 척을 해야 한다.
직원들 앞에서는 불안한 티를 내서도 안 되고, 투자자 앞에서는 언제나 문제없어 보여야 한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괜찮은 척을 한다.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내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 선택에 따른 불안과 후회조차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여겨진다.
걱정 끼치기 싫고, “그러게 왜 그런 길을 갔냐”는 말이 두렵고, 그렇게 속이 썩어간다.
기억에 남는 대표님이 있다.
지금은 시리즈 B를 마치고 누적 투자 200억을 유치한 회사를 떠나셨다.
퇴사 이유는 ‘원인 불명의 신경계 질환’이었다.
몸과 마음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지만, 대표님을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퇴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주치의가 '퇴사를 하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이 갈 수 있다.' 라는 소견서를 적어주고 나서야 퇴사를 할 수 있었다.
그분은 그렇게까지 몰려가며 회사를 지켰다.
직원들의 인건비가 떨어졌을 때는 묵묵히 자신의 돈과 가족돈을 쏟아부었고, 수차례 말을 바꾸는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며칠씩 회사 앞을 서성였다.
몇 년을 그렇게 버틴 끝에 그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겪는다는 원인 불명의 신경계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치료도 어렵다고 했다. 지금도 몸은 온전치 않다.
그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본 나로서는
창업이라는 거대한 도전 뒤에 얼마나 큰 책임과 대가가 따르는지 다시금 절실히 느꼈다.
나 역시 창업을 하면서 끝없이 달려왔다.
괜찮은 척 하다가 무너진 적도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약해보이고 싶진 않았다.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자리다.
힘들다고 말하면 무너질까 봐, 사람을 잃을까 봐, 기회를 놓칠까 봐 침묵한다.
하지만 그 침묵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그리고 때로는,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데려간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인터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젊은 나이에 이미 많은 걸 이룬 창업자였다.
한강뷰가 보이는 집, 좋은 차, 멋진 배우자까지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이었다.
그런데 그는, 하루에 정신과 약을 한 움큼씩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저처럼 빨리 오지 않아도 돼요. 과도한 강박과 불안이 있으니, 성공해도 마냥 좋지만은 않네요."
그 말을 듣는데, 오히려 어렸던 나는 그렇게까지 집착해야 성공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더 몰아붙였다. 그래야 남들보다 빠르게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분명, 그런 긴장과 강박은 나를 어느 정도의 자리까지 끌고 왔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씩 깨닫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가는 길도 있다.
때로는 천천히 가는 게, 더 멀리 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