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우우웅 휘이 바람이 분다. 밤 11시 짙은 남색 밤하늘을 개나리가 수놓는다. 가까이 뜬 별무리가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까르륵거리며 춤춘다. 또 다른 바람은 무희가 천을 펄럭이며 춤추듯 분다. 그 천에 향을 잔뜩 실어다 코에 문지른다. 후각의 역치를 때린다. 순식간에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라일락이 어디 있지?” 살랑살랑 웃음 짓게 한다. 나를 들뜨게 하는 개나리와 라일락의 계절이 왔다.
요즘 두 꽃보다 더 애정을 쏟는 꽃이 있다. 손뼉을 치면 이 꽃의 새싹이 자란다. 인사가 오가고 일상을 나누자 꽃봉오리가 맺힌다. 웃음소리를 머금고 활짝 피어난다. 하루하루 새롭고 다양한 모습이다. 이 꽃은 관상용만 아니라 약초로도 쓰인다. 슬픔과 고통에 잘 듣는다. 눈물과 화병(火病)엔 특효다. 꽃말은 ‘언제나 당신을 신뢰합니다. 지지합니다. 함께할 때 기쁩니다.’ 가족, 친구, 연인에게 마음을 표하기 좋다. 이쯤하면 무슨 꽃인지 궁금할 거다. 이 꽃의 이름은 ‘우정’이다.
…막연한 글쓰기 능력 향상을 꿈꾸며 시작했던 삼다.
3주 동안 글을 쓰고 읽으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짧은 시간, 만나지도 않았지만, 벌써 소중하다.
“삼다”라는 두 음절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웃음 짓게 한다.
떨린다. 앞으로 함께할 날들이 무척 기대된다.
내가 삼다라는 들판에서 피우고픈 꽃은 우정,
우정이라는 꽃을 피우고 싶다.
짝짝 짝짝 짝짝짝. 열렬한 손뼉 세례가 쏟아졌다. 오랜 로망이던 독서작문공동체 ‘삼다’라는 곳에 들어왔다. 첫 번째 수업에서 ‘삼다라는 들판에서 피우고 싶은 꽃’을 주제로 써온 위의 글을 읽었다. 삼다에선 이를 독회(讀會)라고 한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고개를 들자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 바끄럽고도 뭉클했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 회전문으로 드나들었다.
삼다 수업에 다녀온 이틀 후 들어본 적은 있어도 해본 적 없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죽고 싶다는 게 아니다. 반대로 살고 싶어졌다. 남은 생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글 쓰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글을 쓰고 나누며 우정이라는 꽃을 피우고 싶다. 그날 심긴 씨앗이 움터 싹이 나고 잎사귀가 자랐다. 어느새 꽃이 폈다. 알록달록 고운 제 빛깔을 뽐내는 이 꽃이 한해살이풀이 아니라 다년초면 좋겠다.
“우정은 산파술이다. 우정은 우리의 가장 풍부하고 깊은 자질을 이끌어 낸다. 우정은 꿈의 날개를 펼치고, 숨겨진 사유를 드러내 보인다. 우정은 판단을 감독하고, 새로운 생각을 시험하고, 열의를 지탱하고, 열정에 불을 지핀다.”
_세르티앙주, 『공부하는 삶』
덕분에 진정 ‘나'가 피어난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방전되던 내가,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다.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 실수한 건 없는지 복기하며 덜덜 떨던 내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이제 편안하다. 조금 실수해도 괜찮구나. ‘친구라면 넉넉히 받아주고 일러주겠지.’ 믿음이 생긴다. 서로를 안다는 건 이렇게 평안하고 행복한 일이구나. 내 마음에 세워진 경계벽이 허물어진다. 그 너머로 울창한 숲이 보인다. 우정이라는 꽃이 흐드러진 숲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