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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Z Dec 30. 2022

입고 싶은 대로 입어도 되나요?

내가 좋아하는 패션



작년 여름에 투 블럭으로 깔끔하게 머리를 깎았다. 더운데 묵지도 못하는 애매한 길이가 성가셨다. 마침 회사 에어컨이 고장이라는 좋은 핑계도 생겼다. 초등학생 때 태권도장을 다닐 때 짧은 머리를 좋아했다. “어이”하고 발차기하거나 뛸 때 붕 떴다 가라앉는 머리칼이 맘에 들었다. 감고 말릴 때 시간이 적게 든다. 나는 숱이 많아 길이가 길면 무겁고, 짧으면 가볍다. 머리를 꽉 묶거나 오래 묶으면 두통이 생긴다. 머리가 길면 책 읽을 때 거슬린다. 짧은 머리를 좋아할 이유는 많다. 그런데 올해는 머리를 길렀다. 엄마 때문이다. 내가 샤랄라한 모습을 보여줄 때 좋아하신다. 머리가 길고 원피스 입은 모습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나는 반항아라 엄마의 원대로 들어주는 법이 잘 없다. “내 몸은 내 몸입니다. 내 맘대로 할 겁니다.” 선언한다. 그럼 엄마는 못내 아쉬워하신다. 강요할 수 없다는 걸 아시기에 미용사이신 엄마는 작년 겨울에 생일 선물로 머리를 직접 잘라주셨다. “고마워요. 이번에는 한 번 길러 볼게요.”라고 말했는데 너무 더워서 포기했다. 내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해서 마음에 찔렸지만, 더위에 못 이겼다. 그래도 그 후로 잘 참아서 지금은 내 머리칼이 어깨를 덮어준다. 언제 다시 마음이 돌변해서 머리를 짧게 자를지 모르지만,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중학교 2학년 생일이었다. 엄마가 옷 가게를 데려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보라고 하셨다. 나는 내 상체를 다 덮고도 남을 커다란 박스 후드에 큼지막한 검은색과 어둡고 차분한 파란색이 교차하는 줄무늬가 있는 옷을 골랐다. 엄마는 “정말 그게 마음에 들어? 너무 크지 않아?” 몇 번이나 물어보시며 마음에 들어 하시지는 않았지만 사주셨다. 기쁘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신나게 뛰면서 집에 돌아왔다. 퇴근하고 오신 아빠는 그 옷을 입고 있는 나를 보고 여자애가 무슨 그런 옷이냐고 색이라도 바꿔 입으라고 하셨다. 나는 눈물 콧물의 짠맛을 느끼면서 선명한 노란색으로 교환했다. 돌아오니 노란색 얼마나 예쁘냐고 노란색의 장점을 설명해주셨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쉬웠고 속상했다. 그날은 기뻤고 슬펐던 기억으로 웃음과 울음 범벅이 된 생일이다. ‘그때 부모님이 내 취향을 존중해주셨다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입고 싶은 거 입게 해주지. 꿀벌 옷.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에 색이 바뀌어버려서 기억에 많이 남는 옷이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어도 된다고 수용 받았다면 지금보다 옷에 더 관심이 많았을까? 지금은 그 옷과 나를 분리해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내 취향과 내가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게 좋아”라고 말하는 걸 두려워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연장 선상처럼 느껴지는 건 큰 비약일까?

 첫 직장을 다니고 맞는 첫 겨울이었다. 가치관이 달라서 말이 안 통하는 동생과 관계 개선을 위해 데이트했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나와 옷에 관심이 많은 동생에 맞춰 코스를 짰다. 맛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평소와 달라 어색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거야”라고 알려줬다. 식당을 나와 옷 가게를 둘러봤다. 동생은 마음에 드는 옷을 척척 골랐다. 나는 고민만 해서 동생이 색과 스타일을 봐줬다. 결국 나는 외투 하나 동생은 외투 둘, 바지 하나를 샀다. 기뻐하는 동생을 보니 돈이 안 아까웠다. 잘 입으면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몇 달을 눈여겨보았던 마네킹이 있는 옷 가게를 지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 옷은 안 사? 왜 고민해?’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내 동생은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안 아깝다고 돈 썼는데 나한테는 안 해줬다. 매번 ‘더 살 빼면 사야지 하고 미뤄뒀다.’ 그리고 그날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기로 했다. 그 마네킹에 있는 그대로. 옷이 “왜 이제 왔어~ 한참 기다렸잖아!”라고 말하는 듯 잘 맞았다.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본 그대로 역시 예뻤다. 만족스러웠다. 처음으로 내 마음에 들면서 어울리는 옷을 샀고 입었다.

 옷을 잘 입는 편이 아니다. 관심도 크지 않다. 그렇지만 누군가 내 스타일을 보고 “오~ 이런 것도 잘 어울리네요!” 칭찬해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후후, 그렇다면 앞으로 이렇게 입어야겠군.’ 속으로 생각한다. 극 실용주의라 유행이 지난 옷도 잘 입는다. 부모님이 사주신,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사연 있는 옷은 더 자주 입는다. 운동화도 하나만 닳도록 신는다. 겨울에 추위를 타서 따뜻하면 장땡이라며 패션 테러도 종종 한다. 그래도 조금씩 내게 어울리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 나다움이라는 옷을 짓는다. 입고 싶은 대로 입어도 내 패션을 아무도 터치하지 않기를, 또 누군가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나만의 패션을 고수해 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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