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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Z Jan 01. 2023

흐린 삶, 흐르는 사랑으로



기타를 꺼낸다. 오랜만에  현악기를 찾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 뜻이다. “있잖아…….” 남에겐 소음, 내겐 노래로 고민을 털어놓는다. 한참을 하소연하면  개인 날처럼 마음이 맑아진다. “판단이나 편견 없이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이 사랑의 행위이다사실 칭찬이나 격려는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을 만든다는 점에서 인간을 구속한다.”(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기타는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지도 가르치지도 않고 그저 들어준다. 함께 웃어주고 울어준다. 내가 물으면 답한다. 이전에는  들었던 소리가 들린다.  울림이 나를 사로잡는다. 여섯 줄이 떨림으로 속삭인다. “기다렸다. 보고 싶었다.”

 바벨을 잡는다. “프레스 다운!” PT 선생님의 구호에 맞추어 26kg 바벨을 올리고 내린다. 서서 바벨을 들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밀리터리 프레스다. 칭찬에 인색한 선생님이 “ 하는데?” “자세 좋다!” 말을 해주시면 마스크를 썼지만 웃음을 감출  없다. 기쁨에 ‘풍덩잠겨 헤엄친다. 그러기도 잠시, 운동을   다치지 않으려면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머릿속을 뒤죽박죽 시끄럽게 하던 다른 채널은 전부 꺼진다.  신경을 바벨에 집중한다. 다른 헬스장과 달리 우리 선생님은 “, , !   있어!” 하지 않고 “그만이라고 하신다. 힘을 70-80% 쓰고 3 체육관에서 계단을 뛰어 내려갈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운동이  즐거운 이유다. 체육관 문을 열고 다다다 뛰어 내려와 건물을 나오면 새로운 내가, 새로운 세상으로 접속하는 기분이다.

 소설을 읽는다. 산티아고와 사막을 거닐고 조르바의 산투르 연주에 맞춰 춤추며 웃고 떠든다. 김독자와 판타지 세계 속에서 두근두근 모험하고, 셜록 홈스의 눈을 빌려 본 단서로 범인을 맞춘다. 친해지기 힘든 결의 친구를 사귀고, 가슴 설레는 연애를 해본다. 한참 책장을 넘기고 나면 내가 무슨 고민을 했는지 잊어버린다. 맞다. 일종의 현실 도피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깟 도피가 무슨 도움이 되냐고? 소설에서 빠져나올 땐 내가 빠져서 허우적대던 현실의 늪이 단단하게 굳어 디딜 땅이 되곤 한다. 간혹 잡고 빠져나올 수 있는 나무줄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의 저자 니나 상코비치는 사랑하는 언니를 잃고 문학에 몰입한다. 상실의 고통을 망각하려는 자구책이었다. 현실을 맞닥뜨릴 힘을 얻은 그는 이렇게 선포한다. “문학은 삶으로부터가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라고. 내게도 그랬다. 소설이 그랬다.

 냇물이 멈춘다.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그럼에도 삶은 굴러가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응어리가 지고 흐름이 정체된다. 그때 꼬로록 물에 잠긴 나를 끄집어내는 건 위에 나온 삼총사다. 고인 물에 다이빙하듯 뛰어 들어와 구출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들보들한 수건을 뒤집어씌워 준다. 김나는 코코아를 마시라고 건네며 꼬옥 안아준다. 잠시 그들과 함께하고 나면 막힌 자리에 다른 것이 밀고 들어와 툭 하고 물길을 터준다. 막히고 뚫리고 막히고 뚫리면서 삶은 흐른다. 나를 살리는 기타, 바벨, 소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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