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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Z Jan 05. 2023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


 

2022년 2월 11일 금요일 08시 50분 알람이 울린다. 평소라면 단잠에 든 시각이다. 그대로 눈 감고 침대에서 얼음…… 땡! 52분 다시 알람이 울린다. 벌떡 일어난다.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고양이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집을 나선다. 남은 시간 3분 40초, 2분 15초, 1분 32초. 헉헉헉. 1111번 버스에 오른다. 가쁜 호흡과 떨리는 마음을 고른다.

  버스에서 내리니 도보로 9분 거리. ‘이 정도면 시간이 넉넉하군’ 안도하며 지도를 따라 걷는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자꾸 엉뚱한 길로 샌다. 열기가 올라 겉옷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 길을 찾는다.

 “여보세요?”

 “오고 계시는지 확인 전화 드렸어요”

 “네, 지금 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시면 벨 눌러주세요”

 “네!”

 타는 속만큼 발걸음이 빨라진다. 10시 27분. 뛴다. 타다닷. 음, 이 골목인데…… 찾았다! ‘종로 꿈드림 센터’ 벨을 누르기 전에 심호흡한다. 띵동!

 “멘토링 면접하러 왔습니다”

 탈칵. 문이 열린다. 명찰을 목에 건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탁자에 놓인 시계가 10시 30분을 알린다. ‘휴 딱 맞춰왔네! 다행이다’ 먼저 온 면접자가 있다. ‘차례를 기다리려면 시간이걸리겠다. 땀 좀 닦아야……’

 “ㅇㅇㅇ 님? 들어가세요”

 “아, 네”

 일단 이마라도 대강 닦는다. 면접실에서 센터장님과 담당 선생님을 마주한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별수 없다는 마음이었지만 이왕이면 잘하고 싶다. 떨린다.

 “어쨌든, 면접이니까. 자기소개 한번 해주시고 지원 동기도 부탁드려요”

 자기소개를 마치자 학교 밖 친구들에 대해 아는지, ‘줌’을 사용해봤는지, 검정고시를 가르칠 수 있는지, 어떤 성향의 친구를 만나고 싶은지 등 질문을 받는다. 지원한 내 마음이 진실하게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편하게 답한다.

 “아이들이라 오전보다 오후 시간에 멘토링을 진행할 때가 많아요. 마침 선생님께서 목요일, 금요일 이틀이나 시간을 비워주셔서 좋아요”

 여기서 반 확신이 든다. ‘시간 맞으면 그게 최고지!’ 목금 모두 운동시간은 빼두었는데도 좋다고 하시니 다행이다. 끝으로 잠깐 마스크를 내려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지 물으신다. 마스크를 내려 안에 고인 땀을 닦고 살짝 미소 짓는다.

 독서작문공동체 ‘삼다’ 숙제로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이 구원해주리라 반색했던 전태일. 하지만 어려서부터 일하느라 학교를 못 다녀서 한문과 어려운 말로 쓰인 근로기준법을 읽기 힘들었다. 그런 그가 바랐던 건 옆에서 의미를 알려줄 ‘대학생 친구’였다.

 

학력이라고는 국민학교에 2학년, 중등 정도의 공민학교에 한 1년 다닌 것밖에 없는 태일이 그 대학교재(근로기준법 해설서)를 붙들고 씨름하자니 … 전문적인 법학상의 개념과 법률용어들이 수두룩하게 나오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 이때부터 그는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다 한다.
-조영래, 『전태일 평전』

 

 이 대목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흘린 눈물을 공감의 징표로만 간직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전태일이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면 전태일에게 한 발짝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수고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면접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화창한 날씨다. 평화시장 쪽으로 걸으며 면접 때 하지 못한, 아니 일부러 하지 않은 말을 곱씹는다.

 “전태일 같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대학생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설령 도움이 안 되더라도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웃고 떠들고 싶습니다. 함께라서 세상이 조금 더 살아갈 만한 곳으로 느껴졌으면 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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