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와 통화했다. 대화 중 내가 다니는 체육관 관장님 번호를 알려주라고 하셨다. 의문이 들었다. 조금 뜸을 들이다가 “나랑 연락이 안 된다고 관장님에게 연락하면 나 이제 거기 못 다녀”라고 말 해버렸다. 스물아홉 먹은 나는 이제 엄마를 가르치려 든다. “아니, 연락처를 가지고만 있는 거지. 내가 왜 연락해” 마음이 상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아차 싶었지만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연락 안 해도 연락처를 모르면 답답하잖아. 어디에 연락해야 하는지 모르니까”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잔소리를 해댔다.
지난달 수요일 저녁에 전례(예배)를 드렸다. 나와 연락이 안 되는 3시간 동안 엄마는 전화 6통에 문자 3통을 했다. 엄마가 왜 이러시나 분리불안인가 생각했다. 나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꼈다. 이 경험 때문에 엄마가 요구하는 연락처의 용도를 그렇게 판단 내렸다. 사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다르게 생각하면 엄마가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작년에 내가 오토바이에 치이는 사고를 겪었으니 혹여 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만하다. 걱정하는 엄마를 통제하는 엄마로 인식하다니 나는 꼬여도 한참 꼬였다.
사흘 전, 새벽 내내 심하게 배앓이하다가 위아래로 쏟아냈다. 이 정도 내보냈으면 진정이 되어야 하는데 식은땀과 통증이 계속되었다. 뭔가 잘못됨을 느끼고 서둘러 근처 병원을 검색했다. 아무리 빨리 여는 병원도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고통을 견디며 기다릴 자신이 없었기에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동안 잠시 통증이 멎었다. 체온, 혈압, 혈당을 체크하고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답했다. 병원 침상에 누워서 약을 기다리는데 다시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증상을 가라앉힐 주사와 수액을 맞고서야 비로소 진정되어 한숨 잤다. 이 모든 과정을 혼자 겪는데 너무 아파서 서럽거나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아픔만 나아지길 바랐다. 위경련에 장염이 콤보로 찾아왔으니 그럴만했나.
사흘 후, 약을 다 먹고 한 봉지 남았다. 이것도 어제 아껴먹고 남겨둔 약이다. 오늘 아침 이 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약을 먹으면 나중에 아플 때 먹을 게 없는데 어쩌지? 갑자기 경련 증상이 생기면 대책이 없는데. 이 약은 먹고 30분이면 낫는데 다른 약은 들지 안 들지 모르잖아. 한 봉지라도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될 거 같은데…’ 그 순간 엄마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 수중에 있는 약이 3봉지, 10봉지가 아니었다. 딱 한 봉지만 있는데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유지되기를 바랐다. 마치 책 [연금술사] 속 크리스털 접시 상인이 메카로 떠나지 않고 그 꿈을 남겨두듯이 나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약이 남아있었으면 했다. 어제 통화 후 몇분 지나지 않아 카톡으로 내 생각과 마음을 전했고 엄마는 알겠다고 답하셨다. 괜스레 미안했다. ‘그냥 알려줄 걸, 지금이라도 알려줄까’ 하다가 말았다. 엄마와 관계에서 거리는 얼마만큼 필요한지 아직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내가 다니는 곳 연락처 하나 알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 6월 18일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