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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Z May 24. 2023

두려움

나에게 쉼이란


내가 나에게 첫 쉼을 허락한 건 2019년 3월 1일이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날에 나는 약국에서 퇴사했다. 그때껏 부모님이 의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연중에 그들의 뜻이 내게 숙제처럼 주어졌다. 누가 깔았는지 모를 인생 철로에서 이탈하면 안 될 거 같은 기분을 느꼈다. 속도는 또 왜 이리 빠른지 위태롭게 느껴졌다. 전복 사고를 막기 위해 내게 주어진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 길 위를 벗어나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 다른 하나는 속도를 줄이고 멈추는 것이다. 나는 ‘과연 속도를 줄이고 멈추는 게 옳은 것인가?’ 며칠, 몇 달을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미 내 앞에서 달리고 있는데도 속도를 올리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럴까. 내가 이상한 것 같았다.



모호함을 명확함으로 바꾸는 건 내 상태였다. 삶이 재미없고 힘들었다. 그리고 몸이 아팠다. 한창 직장동료와 관계가 어려울 때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버거웠다. 내 생각에는 이러다 죽을 거 같은데 겉으로는 티가 하나도 안 나니 가족에게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해서 나만 답답했다. 눈물 나고 짜증 났다. 시간이 흘러 적응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지만, 또다시 그런 걸 겪는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잡았다. 마찰하는 소리와 열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수선한 마음은 나를 다른 모양으로 힘들게 했다. 2년 차가 된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 부러워했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다닐 수 있어. 대단해” “아니야, 그냥 다니는 거야. 쉬는 게 더 대단해” 자신이 가지지 않은 건 부러움에 대상이 되어 서로를 우러러보게 만든다. 그저 자신이 느끼기에 더 편하고 쉬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선택을 했을 뿐인데 말이다.



2023년 5월 20일, 삼일절처럼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나는 또 퇴사했다. 이번에는 내가 브레이크를 잡은 건 아니다. 삶이 내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쉬어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 젠장. 이제 좀 평화롭나 싶은 찰나에 훅 들어오다니 도대체 삶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투정과 불평이 절로 나온다. 약국에서 나름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계속 글 쓰고 시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만두고 전주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물어도 하나님은 답이 없다. 해결책을 좀 주면 좋을 거 같은데 다른 이야기는 없고 나 보고 “너는 뭐 하고 싶니?”라고 계속 물으신다. 이럴 때 보면 하나님은 사이다가 아니라 고구마 답답이다. 솔직하지 못한 나는 계속 회피하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면 좋으시겠냐고요. 왜 그러시냐고요” 묻고 따지는데 되려 하나님이 웃으면서 질문하신다. “그래서 너는 뭐 하고 싶냐”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나는 두손 두발 들었다.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말한다. “서울에서 글 쓰고 싶어요”



파커 J 파머는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길이 닫힐 때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 경험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길이 열릴 때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지금은 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할 때이다. 어렵다. 가지고 있는 것을 놓기 쉽지 않다. 이미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것으로 생각해서 뺏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약사라는 직업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거라면 나에게 왔다 가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잘 먹고 잘살았다. 앞으로 약국에서 다시 일할지, 글 쓰는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솔직히 “전공도 안 했는데 글로 어떻게 돈 벌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보려고 한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


*유진 피터슨, 메시지 신약_마태복음 6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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